일하다가 공부할 틈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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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의 대부분은 일과 휴식으로 채워지다보니까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둘 중 하나를 희생해서 할 수 밖에 없다.
예전에 한국에서 일할 땐 점심먹고 난 뒤의 시간을 이용했던 것 같다. 적어도 11시반부터 최소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회사에서 사내 방송 같은 것도 하고 제법 어수선한 분위기였기에 딱히 괴롭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컴퓨터에 뭔가 새로운 것을 펼쳐놓고 집중해서 하고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기억나는 취미는 진공관으로 회로도 설계하고 모의실험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하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회로 설계툴도 바뀌고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이런 저런 귀찮은 작업들을 해줄 툴들이 다 사라져버렸으니까. 이렇게 취미는 한 번 놓으면 세상 변화가 빨라서 다시 따라가는데 새로 시작하는 것과 별 차이 없는 시간이 들 것만 같다.
뭔가 연구 개발을 하던 직장에서 그렇지 않은 직장으로 옮기고 나니 점심시간 때는 네트워킹을 하는 시간이라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강권했다. 일과가 끝나면 같은 부서사람들과 ‘정’을 쌓기 위해 술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주말에나 가능했고 주중에 그렇게 술을 마시고 해서 주말에 남아있는 에너지란 게 있을리 만무했다. 리더라는 사람들은 이 시간에 더 윗사람들을 만나서 골프치는 것에 온전히 시간을 바쳤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대단하다 싶다.
미국에 오고 나니 그런 것은 전부 사라졌고 자리에서 내가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고 좋지만, 사실 아웃풋을 빨리 내버리고 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더 일에 집중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그것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살 때에 비하면 정말로 많은 시간을 일 밖의 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별 것 없긴 마찬가지가 되버린다.
그러니까, 아무도 괴롭히지 않고 많은 여가시간이 있는 것 같아도 뭘 새로 배울 시간이란 게 없게 느껴지는 거다. 도무지 한국에 살면서 그 빡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 생활을 했지만 뭔가를 배울 틈이라는 걸 내서 뭘 했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달까? 대부분은 그 반대다. 미국에 와서 일하고 나서 취미란 것도 가지게 되고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서 무슨 발표회 같은 것도 했다니까.
결국, 뭔가를 착실하게 해서 ‘나 이것 좀 할 줄 안다’ 정도 되려면 무지하게 성실해야 되고 틈나는 대로 context switching이 잘 되야되고 한번 물은 것은 잘 놓치지 않는 끈기도 필요한 것 같다. 예전과 달리 요샌 뭔가 좀 한다고 하려면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익혀야 하는 게 참 많다. 어렸을 때도 신문에서 보던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그 때가 ‘정보의 홍수’였다면 지금은 쏟아지는 정보로 익사할 지경은 이미 진작에 지나버린 듯 하다. 취미 수준에서의 학습도 지금은 어디가서 풍월이나 읊는 시절이 아니라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나 취미 좀 한다’하는 시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