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the gap...

영국에 가서 지하철을 타려고 보면 늘 듣게 되는 소리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보지 않은지 한참이라 뭐라고 얘기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mind the gap”처럼 짧고 전달력이 강하진 않았던 기억이다.

내가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분과 나의 나이차가 대략 17년쯤 된다. 그분이 고교 졸업할 때쯤에 내가 태어났으니까. 이분과 나의 관계는 ‘친구’의 관계지만 주로 내가 이분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삶의 경험들을 가끔씩 공유하는 관계이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 무엇보다도 체력의 저하가 뚜렷한데, 스스로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것을 자각하려 하지 않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만일 이 관계가 그냥 알고 지내는 ‘친구’의 관계가 아닌 ‘남녀’관계가 되었다고 하면 상대방의 체력이 많은 나이차로 인해서 저하되어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연인’ 관계라면 상대를 나의 소유물로 여기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얼마안가서 바뀔 생각이지만) 오래도록 같이 살고 싶은 생각도 하니까.

세상이 많이 변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인터넷을 통해서 활발히 논의되는 시점이 되다보니 남녀가 만날 때의 나이차 같은 것도 생각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를 제법 본 것 같다.

글쎄 대개 경우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고 하지만, 8살 차이가 나는 내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정말 “mind the (age) gap”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내가 남녀관계라고 애기할 만한 관계의 상대들은 전부 대개 그 차이가 고작해야 1년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지금의 배우자도 나와 개월 수로 따졌을 때 대략 6개월 차이밖에 안나는 사람이고.

‘그저 좋은 사람이면 됐지…나이는 그냥 숫자에 불과하지’ 하며 떠들어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뭔가 잘 맞아들어가지 않을 때, 혹은 자신의 삶을 타인들의 삶과 비교해서 비하할 때 그런 차이들을 들먹인다. 그러니까 뭔가 상황이 좋지 못하면 남녀간에 존재하는 차이란 차이는 그 모든 불화의 원인처럼 되어버린다.

‘서로 다르기에 좋은 거야. 둘이 서로 보지 못하는 넓은 곳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이런 말은 다 필요가 없다.

어디 나이 뿐인가? 재력과 능력, 학력(이게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외모력(?) 등등의 차이도 다 나중엔 문제 거리가 된다.

그러면 어쩌라고? 꼭 나같은 사람을 어디가서 계량 받아서 만나란 소린가? 싶지만. 그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리석게 늘 서로의 차이를 문제 삼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미 서로 다르고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 만났지만 그게 문제라서 헤어진다고 한다니까.

그러니까 지하철 본체와 플랫폼이 서로 떨어져있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사실인데 그 사이에 gap에 빠져버릴까봐 더 이상 지하철을 타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gap을 인정하고 지하철을 타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다 필요없다. 당장 아무런 risk taking도 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겠다는 거니까.

내가 봐온 대개의 사람들은 다 그렇다. risktaking-moving-on보단 doing-nothing-(while-waiting-for-the-perfect-one)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상대방과 나와의 차이를 그저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험인자로 받아들이게 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니까.

이 차이는 처음부터 쌍방이 인지하고 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다가 상황이 뭔가 좋지 않게 진행될 때 불거진다. 사이가 멀어지게 된 문제의 실체가 무엇이었든 “Blame it on the gap”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