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불기...

가불기라는 말을 제법 많이 들어왔는데, 그 뜻을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문맥상 대충 그 뜻이 자가당착 내지는 자승자박 쯤 되는 것 쯤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알고보니 ‘가드가 불가한 기술’이란 것이었다. 격투 게임중에 상대방의 공격을 가드할 수 없는 기술이 있는데 바로 그걸 말하는 것이었다.

자승자박이나 자가당착의 경우는 자기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을 의미하니까 뭐랄까 의미가 다르다고 느껴지는데,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내가 충고를 하거나 아무리 좋게 얘기해주려고 해도 되려 내가 추례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행동을 한다면, 또 그게 진하게 느껴진다면 그 때는 그냥 빨리 관계를 멀리하(지 말고 끊)는 것이 답이다.

가장 좋은 얘가 상대방이 지극히 이기적이라 스스로 얌체인 줄 모르거나 얌체라는 것을 당연시하는 존재일 때다.

이런 존재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필요가 없다. 내가 뭐라도 내색이라도 하려면 할 수록 내가 더 추해지고 그렇다고 반대로 참으면 참을 수록 견디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뭐랄까 나에게 일종의 가불기를 시전하는 존재라고 받아들여야 맞다. 되려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출하게 되면 성격 이상자 취급을 받아 나의 정신상태는 더 피폐해지게 된다. 어차피 가드치지 못할 거라면 그냥 (성인처럼) 순순히 그 공격을 받아들이(고 사망하)거나 아니면 36계를 시전하는 게 맞다. 어떻게든 당해낼 방법이 없는 것이니까.

왜 이것을 빨리 눈치채거나 확실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느냐 하면 대개 이들도 시간에 따라 빠르게 진화하고 그 자신보다 더 단수가 높은 존재들을 만나보면서 거지 기술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대개 단수가 낮은 급의 얌체들은 스스로 이기적인 생각을 겉으로 잘 드러내기도 하고 나르시스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서 대부분 쉽게 걸러지는 반면, 고수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쨌든 이런 고수를 만났을 때 이도 저도 아닌 태도를 취하고 있다보면 나도 지킬 수 없고 피해도 고스란히 입게 된다. 관계의 종말이 와도 나는 차마 내 입으로 그 존재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으니까. 다른 이유로 관계의 끝을 만들어 낼 수 밖에.

물론 이런 존재들은 그 스스로가 거지가 아님을 계속해서 증명하려 든다. 살면서 그러한 순간을 제법 많이 마주쳐왔을테니까. 그래서 평범한 이의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거지의 모양새와 행동과는 거리가 먼 형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정말 어리석게도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을 취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기만당하고 털리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정신 차려라. 어쩌다 얌체짓 한 두 번 하다 말 그런 존재가 아니다. 뼛속까지 그냥 거지다.

우리할 수 있는 일은 언젠가 진짜 찐 선수한테 걸려서 홀라당 다 털리게 되는 것을 바라는 정도랄까? 이러면 안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