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빈둥 살아야 승리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빈둥빈둥’했던 사람이 있다. 겉으로는 전혀 빈둥빈둥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의 멋내기, 이미지 다듬기에 시간과 돈을 많이 쓰고 자신의 말투 같은 것도 있어보이게 하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일은 하지 않고 교회를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서 별 의미없는 것들을 의미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면서 보냈다. 그가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면 어디서 그 많은 단어들을 외우고 써먹었는지 그 ‘기도 언어’의 현란함에 놀랐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소박하게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던 내가 알던 신부님들의 기도와는 그 빤질빤질함에서부터 차이가 심했다. 그래서 난 그 사람 앞에서 기도를 해본 기억이 없다. 아니 혹시라도 나더러 기도를 해보지 않겠느냐 하는 얘길 들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에 시달렸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사람과 알고 지내던 시절에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고 뭘 하는지 잘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더 자세히 알 방법은 없었지만, 이 사람의 자식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경제적인 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꽤나 무시하기도 했고 창피해하곤 했다. 이 사람도 나름 중요한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이들이 왜 이렇게 하는지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 내가 얻어들은 다른 정보들을 결합해서 보면 충분히 그럴만했단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일반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은 오전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오는 삶을 살고, 주간에는 대개 자신의 생업에 몰입해 있다. 사회에 나가기 전엔 대개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마찬가지로 주중의 시간을 대부분 학교에서 보내고 시험 때면 더러 바빠지기도 하는 삶을 산다.

이 사람은 그의 생애에서 어쩌다 운이 좋아 잠시 직장 생활을 했던 시간을 빼면 대부분 자신의 부인이 하던 사업을 아주 약간 돕거나 (모냥이 빠지지 않는 수준에서의 단순 노동), 또 교회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그 (엄중히)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어떤 경제적인 활동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는 나름 아버지라고 인정받고 살았고 이 집안에서 결혼 전부터 모든 경제적인 수입을 가져다 준 그의 아내에게도 남편으로 인정받고 살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도 좋은 멘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꾸준한 ‘빈둥빈둥’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정신적/체력적 한계에 이르는 상황을 최대한 피했다. 가끔씩 꾀병 혹은 작은 병치레를 하면서도 당장 죽을 것 같이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좋은 멘탈을 유지하는 것은 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좋은 멘탈을 유지하지 못해서 (경제적으로는 매우 무능력하지만) 매력적인 아버지, 남편이 되지 못했다면 경제적인 능력이 형편없단 이유로 집안에서 더 박해(?)받았을 수 있었을테니까. 아마도 나였다면 무능력한 내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해 가중되는 가족들로부터의 스트레스, 타인들로부터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아마 일찌감치 파국으로 끝났을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억척스러운 배우자를 만난 덕택에 자신으로 인한 경제적인 공헌이 전혀 없이도 - 사업을 벌인다고 해서 되려 가산의 대부분을 탕진한 것으로 치면 엄청난 손해를 불러왔다고 해야한다 - 자식들은 전부 출가시키고 그것도 모잘라서 자식의 결혼을 통해 얻어진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무시받지 않고 살고 있다.

되려 사회적으로 빨리 성공해서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에너지를 직장생활에 몰빵하게 되므로 사회적으로도 가정내에서도 그다지 영향력이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죽어라고 가족을 위해 일해봤자 다 쓸모없다/부질없다’하는 삶을 살게 될 뿐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제대로 분배하지 못해서 - 아니 직장 생활을 그럭저럭 해내려면 여기에 거의 몰빵해야 된다 - 이미지/인간 관리에 실패한 결과다. 그러니까 빈둥 빈둥 했다면 틈나는 대로 애들과도 잘 놀아주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점수도 쌓았겠지만 아침 새벽같이 사라져서 한밤 중에 나타나는 사람이 집안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다. 자기가 벌어온 돈도 자기 맘대로 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집안 서열 1위인 엄마에게 수시로 굴욕을 겪으며 집안에서 온갖 모냥 빠지는 일은 도맡아 해야 하니 권위라는 게 생길 수도 없다. 더구나 이런 사람은 스스로가 가진 능력이 조금의 나태함/빈둥거림으로 떨어지게 되면 실직의 위험이 올라가는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생활이 늘 그렇게 빡빡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창의력이나 융통성/재치같은 것을 보여줄 수가 없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뭐든 잘하는 것 같지 않지만 이 사람은 실제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빈둥빈둥하면서 여분의 에너지를 쌓아둔 이가 뭘하든 여유롭고 빠릿빠릿하게 대응하고 창의적인 임기응변같은 걸 행할 수 있다.

이 케이스를 보고 내가 생각한 것은 다음과 같다.

빈둥빈둥하는 나를 괴롭히려는 이들은 늘 존재한다. 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좀 더 편해지려고 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자신이 뭔가 최선을 다하고 빡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빈둥거림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싫어’

가 너무 퉁명스럽다면,

‘나중에 하면 안될까?’

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둘이 하면 낫지 않을까?’

등등 빈둥거리는 동안 생각할 수 있는 말표현들은 참 많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뭔가에 너무 몰입해서 빡시게 살아버리면 그 스트레스는 어떻게든 쌓이고 어딘가에서는 풀어져야 하기 마련이다. 그게 쉽지 않다면 너무 많이 쌓이지 않게 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하루를 생활할 수 있는 에너지는 유한한데 그것을 너무 한곳에 몰아서 탕진해버리면 나머지의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가 있다. 빈둥빈둥하는 느낌이 들더라도 적당히 배분하지 않으면 결국엔 탈이 난다.

정신력을 좀 덜쓰는 만큼 무능력해졌다고 해서 그걸로 모든 것을 다 그르치지는 않는다. 내가 평소의 노력을 줄임으로써 돈이 약간 더 지출되고 이루어져야 할 일이 하루 이틀 더 늦어질 뿐. 그동안 쌓아올린 것이 한꺼번에 전부 무너져내린다거나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만들진 않으니까.

대충 살아야 나도 행복하고 내 주위 사람들도 행복하게 된다. 대충 살자.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말고. 너무 애쓰지 말고. 너무 기대하지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