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야 재밌지..?의 문제..

꽤 오랜동안 내가 스스로 번아웃인줄도 모르고 주변 사람에게 민폐만 끼치다가 내가 정말 문제가 있다고 깨닫은지 얼마 안됐다. 그 이후로 가끔씩 마시던 술도 끊고 커피는 디캡을 먹거나 거의 안먹는 수준으로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어나기 싫어도 자동적으로 깨는) 생활을 3주 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2주가 지나면 대부분 습관으로 굳어지는데 이것도 굳히기 상태로 들어갔다. 좋은 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다만 썰렁하고 깜깜한 새벽에 눈이 떠지는 것만 빼곤.

그러나, 규칙적인 생활, 특히나 일찍 자는 것이 좋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그게 대부분 일에 욕심이 생겼거나 정신이 피폐해졌거나 그런 경우다. 이 중요한 항상성을 잃게 되면 안좋아지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쉽게 잊는다. 뭐가 안좋아진 것인지도 잘 모른다. 다시 이런 나락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지 한다.

또 살을 빼기 위해 하루에 한번만 먹는 일을 꾸준히 했는데, 이게 정신 건강을 심하게 훼손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루에 두끼를 적당히 먹어주었을 때와 한끼도 맛없게 먹었을 때의 나의 정신 상태의 차이는 매우 컸다. 일도 잘되고 화도 안나고 짜증도 안났다. 그동안 왜 내가 미친놈처럼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렸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정도니까.

또 생활 습관의 변화 중 하나는 오전 일찍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차가 막히기 시작하는 대략 3시 경에 퇴근하는 것이다. 어차피 남은 일은 집에서 조금 더 하면 된다. 밖이 대낮같이 훤할 때 퇴근하는 것도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 중 하나다. 문제는 집에 와서 딱히 일 말고 할 게 없다는 거다. 예전 일중독에 쩔어있을 땐 대낮의 시간이라는 것은 온전히 일에 바쳐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녁 먹기 전까지 계속 일을 했다. 저녁을 먹고난 뒤 밤이 되어도 일을 하고 새벽에도 요청이 들어오면 일을 했다. 효율은 좋지 않았지만 할 게 그것 뿐이라 그렇게 했다. 짜증이 심해지고 화도 잘 났고 왜 귀찮은 것들은 나에게만 쏟아지는가 한탄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요청 따위는 다 잘라버린다.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냥 다 끊어버리고 일찌감치 누워서 책을 본다. 책을 보다가 잠이 오면 좀 자기도 하고. 깨면 제대로 잠들때 까지 또 책을 본다. 전엔 책을 보는 게 참으로 대단한 일,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나에게 더 없이 좋은 일이 되었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다보면 뭐랄까 마음속에 자신감 같은 게 생겨난다. 예전엔 책 대신 영화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은 책이 더 좋아질 때가 있다. 책이 한창 흥미 진진하면 나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기도 한다.

제 때 잠이 들어서 새벽에 깨게 되면 개운하기도 할 뿐더러 일상 생활의 시동을 거는 것도 더 쉬워지고 막히는 출근 길을 지지부진 기어가도 짜증나는 느낌이 없다. 차 안에서는 나름대로의 할 일을 하면 된다. 명상을 하든지 나와 대화를 하든지 노래를 부르든지. 뭐든 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교통체증 때문에 늦어지는 출근 시간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퇴근하고 돌아와서 밥 먹기 전, 그리고 주말에 할 수 있는 일만 찾으면 나름 나를 온전히 구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지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잘 쉬기, 잘 먹(고 싸)기, 잘 놀기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잘 놀기’가 부족하단 거다. 갑자기 생활 습관과 일과를 바꾸고 나니 뭘 해야 재밌게 잘 놀수 있을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거다. 도무지 예전엔 뭘 하고 살았던 건가 싶을 정도로.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고 즐겁지 못한 것은 예전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예전보다 즐거워지려면 분명히 예전과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해야한다!’

그렇다. 예전과 같이 뭔가 소극적이면서도 웅크리고 할만한 걸 찾으니 재미있는 게 나올 리가 없다. 분명히 재미있으려면 뭔가 도전하는 느낌이 있어야 되고 어느 정도 하다보면 작게나마 성과가 있어야 하는 일이어야 한다. 예전에 하지 않았던 것을 찾아서 하는 게 좋을 뿐더러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더 좋다. 되든 안되는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거다. 열린 마음으로 자신감을 갖고 말이다. 되면 좋고 안되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을 여지를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란 말이 이 때 쓰는 말이지 싶은데, 거꾸로 말하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무것도 안하면 (하늘이고 뭐고) 아무도 돕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그냥 고립이 되는 거다. 뭔가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봐야 그냥 은둔 고수? 뭐 그 정도일 뿐인 거다. 적어도 내가 하는 일로 세상과 소통하고 내 자신을 세상에 내어맡길 수 있는 그런 기회는 그냥 포기하고 가야 한다.

모르겠다. 당장엔 예전에 하던 취미의 목표 수준을 많이 끌어올려서 예전에 하지 않던 고급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해보거나 보다 액티브하게 일을 하거나 아예 공개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리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그러니까 방안에 숨어들어서 몰래 몰래 하던 걸 드러내놓고 하는 거다. 필요하면 가르쳐도 주고 필요하면 만나서 소통하기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지금의 날 많이 바꾸지 않고 또 내가 너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만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도 재밌는 뭔가를 찾으려니까 할 게 없다는 결론만 나오는 거다. 욕심을 버리고 그냥 재밌어 보이는 것을 붙잡아서 조금씩 해보면 대부분 금방 빠져들게 될 거라 본다. 작게 나마 성공 경험이 생기면 자신감도 붙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도 생겨나겠지 바래본다.

일단 오늘 생각난 게 그렇다는 거다. 더 좋은 생각이 곧 나올 것 같다. 점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