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의 심리학..

인터넷과 유튜브를 들여다보면 재회의 심리학, 또는 재회학(?)의 이름을 달고 있는 소위 헤어진 연인을 다시 이어붙이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채널이나 사이트가 있는 것 같다. 더러는 비싼 상담료를 받고 컨설팅을 하는 경우도 빈번해보인다. 타로 카드로 헤어진 상대의 마음을 읽어낸다거나 잡음이 잔뜩 섞인 음악에 재회의 파동을 담았다고 하는 영상을 보게 만든다거나, 쉽게 말해서 혹세무민하는 서비스들이 많이 나왔다는 거다. 어쨌든 엄청나게 인기가 있음은 맞는 것 같다. 나름 타겟팅을 잘 한 비즈니스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물론 이 분야의 실질적인 매출이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아마도 therapist들이 자신들이 하는 여러 가지 일 중 하나로 이런 일을 하지 싶은데, 일종의 커플 카운슬러? 뭐 이쯤 되는 것 같다.

한국이야 인터넷이 발달되어있고 서울에 다들 몰려살고 있는 데다 강남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갖춰지면 나름 이것을 비즈니스 삼아 하기에 괜찮은 일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 잘 나간다 하는 회사에서 받아가는 상담료도 사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무의미한 카운슬링 두어시간 받는 것과 차이가 없어서 ‘효험’만 좋다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테라피스트들의 카운슬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 몇 번 경험을 해본 바,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오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금방 금방 묘책을 사용자에게 제깍 제깍 알려주는 한국의 서비스 (비록 욕을 먹고 있을지라도)가 훨씬 낫다라고 말하고 싶다.

과연 재회의 심리학이란 뭐란 말인가?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어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현실 재 파악/위로 요법이라고 보여진다.

대부분 실연한 상태에 놓여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타로카드를 찾아가거나 재회의 심리학 같은 것들을 미친 듯이 열어볼 정도로 절박한 사람들은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 볼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어느 정도 잘 먹고 휴식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몸과 정신 상태를 온전히 되돌려 놓았다면 대부분 연애를 할 정도로, 또 연애를 위한 호르몬이 끓어넘쳐서 높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쉽게 자신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실연의 상황에 직면하면 그 사람에겐 생존의 위협을 느낄만큼 강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멀쩡한 이성은 다 사라지고 어린 아이같은 본능만 살아남아서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와 같은 불쌍한 지경이 되는 거다. 이런 강렬한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서 대부분 엉뚱한 방법을 도입하게 된다. 술을 엄청나게 마시거나 갑자기 과한 흡연을 하기도 하고 식사도 거르고 잠도 못자서 정말 엉망인 상태로 추락하게 된다. 정상인이라도 이런 악조건에서는 도저히 멀쩡한 정신 상태로 버텨낼 재간이란 게 없는데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거다. 엄마 잃은 아이가 필사적으로 찾아헤매듯 이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 누가 되었든 관계를 회복시킨다며 별 별 짓을 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감정적 거부라도 당해버리기라도 하면 그 엄청난 감정의 쓰나미는 관계를 악화시켜버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그 상대방에게도 엄청난 마음의 상처와 충격으로 이 사단이 난 것이기 때문에 이성이 반듯하게 살아있는 멀쩡한 모습으로 다가가도 잘 될까 말까하는 상황인데, 되려 엄마에게 거부당한 어린 아이의 분노의 막판 세레모니가 펼쳐지거나 엄머로부터 분리 되기 싫은 아이의 눈물겨운 매달림이 펼쳐지는 거다.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이별을 고해버린 사람인데 울며불며 붙잡으려고 하면 상황은 더 애매하게 갈 수 밖에.

나의 예전 경험들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마음은 아프고 괴로울지 몰라도 그냥 현실에서 떨어져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여러 달 버텨보면서 잘 먹고 푹 쉬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싶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새로운 껀수)만 청했더라도 나는 그 오랜 시간동안을 과거의 기억으로 허우적 댔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고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재회를 하겠다는 예전의 상대를 참혹하게 굴육의 구렁텅이에 빠뜨려놓았을 것이 분명하다.

공포와 불안 속에 허우적 대면서 흔히 하는 실수가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충분히 긴 시간동안 누군가의 좋은 연인이었다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좋은 연인일 수 있다는 말도 되고 지금 마음속에 그리는 상대가 아닌 객관적으로 그 상대보다 훨씬 더 좋고 나은 조건의 누군가의 연인이 될 수 도 있다는 말이 되는데, 대개는 이별통보를 받음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바닥으로 떨구고 이 세상에는 오직 헤어짐을 통보한 그 상대만이 우뚝 서 있는 것으로 보여질 뿐인 거다. 이들이 오직 알고 싶은 것은 이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느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이성에게 더욱 더 매력적인 내가 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거에 집착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고통의 수렁에 소중한 자기 자신을 밀어넣는 거다.

난 도무지 사람을 왜 이런 식으로 진화시켜놓은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 그래서 수많은 연인들이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고 수많은 재회상담, 점집, 커플 카운슬링 들이 돈을 벌고 있는 것이겠지.

더욱 웃긴 것은 이별을 통보 받으면 그것을 마치 이 세상의 종말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날 그렇게 만들어버린 상대는 더욱 더 매력적이고 분명히 나보다 나은(?) 상대를 만나서 행복해질 거라는 근거없는 상상(?)을 하면서 매일 매일을 보내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조금의 실수라도 하는 날엔 당장에 내일이라도 이별 통보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 버릴 그런 상대와 여태껏 연애를 했다는 말도 되고, 늘 다른 연인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날 만나온 연인과 만나왔으면서도 한번도 의심하거나 눈치채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다.

내 오래전 경험을 늘어놓자면 대학 2학년때 나는 1년 반 사귄 여자친구에게 일종의 환승 이별을 당했는데, 이 친구가 나름 순진했던 나머지 나를 한번에 끊어내지 못하고 대략 6개월을 질질 끌었던 기억이 있다. 덕택에 나는 황금과 같은 대학 2학년을 칠흑과도 같은 암흑 속에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조건이 훨씬 좋았던 내가 그까짓 환승 이별의 배신감, 그리고 떠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하며 하루 하루 괴로워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잘 노는 친구들에게 소개팅을 부탁해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거나 하다 못해 교회라도 나가서 참한 자매 하나 소개받아서 잘 지냈더라도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환승이별 따위 하지 않는 지조있고 괜찮은 사람으로.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가치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내내 그러한 삶의 태도를 고착화시키면서 살았다. 태어나서 딱 한번 해본 연애가 호기심에 의한 환승이별로 끝이 난 것 뿐인데, 난 그렇게 나 자신을 규정해버린 거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난 여전히 그 친구를 못 잊고 대학생활을 마치고 대학원 진학했는데, 우연히 그 친구의 연락을 받고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환승까지 하고 그렇게 질척거리고 다시 나타날 면목이 없어서 연락을 못했단 소릴 들었다. 뭐랄까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해왔던 그 사람이 아니었고 순진한 내 마음은 여전히 그때의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상태로 끝이 났다. 물론 나는 그 이후로도 여럿 더 만나다가 적당한 시절에 누가봐도 비교도 안되게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했다.

아쉽지만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잘 포장해서 가꿔놓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아주 쉽게는 운동하고 이런 저런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외모에 살짝 살짝 돈과 신경을 쓰면서 살았다면 모든 문제는 너무 쉽게 풀려버렸을 거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면 환승이별한 상대는 이후에 후회가 되어서 돌아오고 싶어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만일 그랬다가는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 상대에게 대차게 까일 확률이 100%이니까.

그러니까 실연의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지능이 심각하게 저하되고 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누군가 옆에서 강하게 깨닫게 해주기 전엔. 그래서 그 재회 서비스라는 게 존재한다고 봐야지 싶다.

내 생각엔 역시나 쓸데없이 예전의 그 상대와 다시 만날 구실을 찾아주는 것 보단 더 좋은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일을 해야지 ‘돈 값’을 하는 거라고 본다. 이를테면 빨리 제정신 차리게끔 사람 만들어주고 외모와 메너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그런 서비스 말이다. 그러면 사실 재회 서비스만큼 절박한 이들이 와서 돈을 낼 일이 없을테니 꼭 그 사람과 재회하게 해준다고 해야겠지만. 환승을 했건 성격차로 이별을 선언했건 멀쩡한 상대에게 그런 몹쓸 짓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인륜지 대죄’를 지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그 사람은 그냥 잊고 훨 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고 하고 싶다. 문제는 수렁에 빠진 그 실연의 주인공은 오직 자신을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사람만 떠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넓고 한창 때의 남녀는 많은 데다가 이들은 홀로 있기 보단 같이 있기 원한다. 예전의 연인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악조건들이 하나도 없는 최상의 조건의 연인을 만날 가능성이란 것은 나 하기에 따라 늘상 열려있다. 물론 만나고 나서 잘될지 안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홀로이기 싫어서 만났다는 사실만 전제해봐도 잘 될 가능성은 분명히 높은 것이다. 인륜지 대죄를 지은 옛 연인 따위 재회하려고 심리학 따위 동원하지 말자. 내 순수한 마음에 비수를 꽂아 깨뜨려버린 그 상대는 어찌 살든 더 이상 알 바 아닌 거다.

그래도 꼭 그 원을 이루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뿐이다. 그날 부터 싹 잊고 (안되겠지만) 잘 먹고 잘 쉬고 규칙적으로 살면서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운동을 해보라는 거다.

왜? 제 정신 돌아오게. 제 정신 돌아오면 나란 사람이 얼마나 좁은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게 그냥 별 것 아닌 것이었다는 것도. 다시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깨닫게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