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 관계..

내가 예전에 흔히하던 생각이 사람이란 만나봐서 지내봐야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라는 것이었다. 나란 사람은 그냥 신뢰 받을 수 있는 믿음과 신용의 상징이니까 누구에게든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신뢰하는 마음이 생각이 들지 않듯 상대방도 나한테 그럴 것이라는 거다. 더구나 어떤 큰 금전의 움직임 같은 게 믿음으로 문제 없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관계라는 근거가 없었다면 아무리 상대방이 자신이 신뢰를 중요시 여긴다느니 신뢰할 만할 행동만 한다든지 하는 얘길 해봐야 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작은 수준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면 점점 더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접게 된다. 더구나 그럼에도 상대방은 그것에 대해서 당연한 듯이 대응하고 있다면 더 볼 것도 없는 거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를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나부터 그런 행동을 해야 한다.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할 게 어니라.

그 누구도 내가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데 자신이 먼저 선뜻 그런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또 내가 신뢰할 만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나 스스로의 안정감을 높일 수 있다.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할 지 안할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다거나 상대방의 행동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지 지켜보면서 불안해 할 게 아니라 말이다.

또 자신이 먼저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생기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내 역할에 충실했을 때 상대방에 대한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거다. 내가 내 역할을 못하고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비겁하다’라는 소릴 듣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이 불안정한 감정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다. 나의 태도가 일관되고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다 해냈다면 나는 쓸데없이 많은 정신 에너지를 소모하며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상대방에 대한 태도에서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으니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되는 거다.

허접한 레벨의 인간관계에서나 내가 내 할 일을 다 하고 선의의 행동을 다 했음에도 배신당하거나 이용만 당하는 뒤통수를 맞는 것이다. 적어도 나와 관계를 맺는 상대의 수준이 충분히 높다고 판단되었다면 그 다음엔 내가 해야 할 일을 먼저 완수하고 관계에 헌신하는 모션을 취함으로써 상호 존중감, 그리고 관계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높일 수 있게 되는 거다.

적어도 인간관계라는 것은 내가 10을 손해보고 상대로부터 5만 얻는다고 해도 관계가 원만하게 남았다면 충분히 성공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5를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으니까 적자가 아닌 거다. 단기 순익을 따졌을 때 5만큼의 손실이 있었지만 사람을 얻었다는 것은 일종의 장기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니까 조바심 내야 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5를 잃었으니 불평등한 관계라고 억울해 하며 사람을 남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5를 잃고 끝나버린 게임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