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으로 도시락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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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던 세대라고 하면 엄청나게 나이든 세대라고 할텐데 그게 맞다. 어딜가나 다 단체급식이 일반화된지가 한참이니까 그런 거 학교에 가지고 다니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 없는 형편에 취업준비를 하는 이들도 편의점이나 분식점에서 사먹거나 길거리 음식들을 사먹는다고 하니까 도시락라는 단어 조차 사멸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데, 내가 그걸 싸가지고 출근을 한다.
회사 식당 밥이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견디지 못하고 질이 급격히 낮아져서 일주일에 1-2일을 빼면 먹을 수 없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은 애초에 식당 메뉴를 포기하고 그냥 샐러드만 가져다 먹고 있어서 이들에겐 별 타격이 없지만, 나처럼 거의 매일 (소)고기 메뉴만을 노리며 살던 이들에겐 지금 상황은 재앙과도 같다. 2-3불만 더 올려도 분명히 양질의 점심을 제공할 수 있을텐데, 또 지금과 같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시절엔 2-3불 올려도 볼멘소리 할 이들이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근 10년의 물가를 내 기억을 토대로 보자면 두꺼운 Ribeye steak 3장을 구워먹을 수 있는 고기 값을 보자면 10년 전 대략 25불쯤 했었다. 지금은 대략 75불쯤 줘야 먹을 수 있으니까 3배가 뛰었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인 물가를 보면 고기 같은 것들은 3배 정도로 올랐지만 개솔린은 당시나 지금이나 아주 큰 차이가 없고 집값은 대략 3배가 된 것 같다 팬대믹과 같은 큰 사건이 없었다면 아직 3배에 이르진 못했을텐데, 어마어마한 돈을 풀어댄 결과 그렇게 되었다.
세계의 공장 중국 덕택에 먹는 걸 제외한 일반 생필품들은 별로 비싸지지 않았지만 보험료도 엄청나게 오르고 외식 물가 또한 엄청나다. 어디 가서 3-4명이 뭘 먹으면 100불 정도 달아나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물가가 오르면서 물가에 비례한 세금도 뛰고 어쩔 수 없이 임금이 뛰면서 또 세금도 뛰고 그렇게 집값이 오르면서 세금이 또 뛰고..
나는 원래 소비를 극도로 자제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 저것 생활에 쓰이는 물건이라든가 어쩌다 약간의 호사다 싶을만한 식재료들도 사고 좋은 식당에서 제법 외식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런 것들 조차 아예 하지 않는다. 형편이 되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이런 시절에 돈을 쓰는 것이 기분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아랑곳 없이 여기저기 좋다는 곳에 때마다 여행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연중 이렇게 맨날 집에 있고 연중 회사만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긴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가 길었는데, 집에 그 옛날 사두었던 보온 도시락이 있는 걸 발견하고 애매한 스넵웨어 같은 데에 넣어가기 보단 이게 낫겠다 싶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도시락 싸는 게 귀찮아서라도 회사에서 점심을 먹을 것 같지만, 맛없는 것을 억지로 먹는 괴로움이 도시락을 싸는 귀찮음을 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놀라웠던 것은 그릇의 크기가 작아서 도무지 어떻게 여기에 담은 음식만으로 점심을 떼울 수 있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한참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던 성장기 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상 먹다보니 도시락의 크기가 너무 작아보였던 거다. 당연히 늘상 과식하게 되었던 거고 거기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먹어댔으니 당연히 소화가 더디거나 소화하는데 많은 노력이 들어갔었을 수 밖에 없다.
그 작은 그릇에 이런 저런 음식을 옮겨 담다보면 사실 귀찮고 불편해지기도 한다. 이것도 서너번 해보면 음식을 준비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나름의 계획 같은 게 생겨서 식재료와 메뉴를 정하는 기술이 늘어난다. 나는 넓직하고 편리하게 디자인된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고 집앞에 있는 costco에서 편하게 식재료를 받아다 만들고 있으니 사실 이걸 귀찮고 불편하다 말할 입장은 못된다. 인근 시장에 걸어가서 장을 봐다가 답답하고 좁고 불편한 부엌에서 매일 같이 다양한 메뉴로 도시락을 싸주셨던 어머니의 노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글쎄 내가 그분의 도시락을 지금 싸드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비록 이렇게라도 작은 용기를 사용함으로써 나는 음식 섭취를 줄이고 혼자 고독과 도시락을 같이 잘근잘근 씹으면 위의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을 기대했는데, 여전히 식욕과 먹는 습관의 힘이란 게 엄청나서 거의 나도 모르는 새에 보온도시락 하나를 5분이 안되는 시간에 전부 흡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