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실수때문에 그르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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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제출하기로 요청받은 글을 다 쓰고 인쇄해서 다시 읽어보다가 또 다시 알게 되었다.
‘나에겐 정말 만성병 같은 바보 같은 글쓰기 증상이 있구나.’
대충 정리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또 나중에 읽게 되면 멍청하고 바보같단 생각을 하겠지만 그래도 적어보려고 한다.
글을 쓰려고 할 때는 어떤 ‘쓰고 싶은 욕구’에 의해서 쓰게 된다. 그렇기에 그렇게 작성한 글은 그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성하다보면 이내 그 글은 다른 내용으로 변질된다. 그러다보니 시작과 중간, 끝 부분의 맥락이 온전히 같지 않고 계속해서 본래 방향과 다르게 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조망했을 때 발견되는 것이고 하나의 문장 혹은 하나의 문단에서도 그런 모습은 끊임없이 관찰된다. 생각이 이리 저리 떠돌기도 하고 잠깐 먼데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영영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우리 말에는 호응관계라는 게 있어서 어떤 부사로 시작했다면 끝이 어떤 모양으로 마무리 되어야 읽거나 말하거나 또는 읽은 것을 듣거나 할 때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진다. 적어도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한다면 이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데, 문장을 쓸데없이 길고 미려하게 쓴다거나, 쓰고 있는 동안에 갑자기 떠오른 또 다른 생각으로 한 문장으로 구겨넣으려는 욕심으로 쓰다보니 애초에 무엇으로 시작했는지 쉽게 잊고 앞과 뒤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게 적어놓은 문장들을 허다하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이유 때문에 proofreading 같은 것을 하는 것이지만, 그토록 오래 우리 말을 읽고 쓰고 말하고 들어왔으면 이쯤은 능히 극복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수려하면서도 논리 정연하고 사실을 적확하게 묘사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문장을 구사할 능력은 애초부터 없더라도 적어도 읽어내려가기에 자연스러운 글은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을 때 이렇게 앞뒤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문장이라든가 문단이라든가 글을 늘상 마주하고 있다보면 정말 답답하단 생각만 든다.
차라리 그냥 단문으로 내 생각만 나열했더라도 더 좋은 글이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문장에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모두 다 쑤셔넣으려고 하다보면 재미없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쉽게 와닿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난 AI와 이런 저런 문답을 할 때 참으로 많이 배우게 된다. 물론, AI를 학습 시킬 때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양질의 자료들을 사용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AI가 던져주는 문장이나 표현, 답변의 구성 등등은 정말 하나 하나 너무 훌륭하다라는 생각만 들게 만든다.
문장을 작성하면서 정말 정확하게 기술해야 하는 요소들을 대부분 빼먹고 있어서 듣거나 읽는 사람에게 혼동을 일으키게 끔 쓰고 말하는 구나 하는 깨닫음도 크지만, 내가 마음 먹고 잘 적어보려 했던 글도 AI에 다시 쓰기를 요청해서 비교해보면 헛점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여 차마 더 이상 읽어내려 갈 수 없을 땐 절망감 마저 든다.
‘AI가 곧 인간을 대체한다’ 등등의 우려섞인 이야기는 ‘AI가 이제 겨우 사람의 수준을 따라오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AI로의 대체가 시급하다’가 더 맞다라고 본다. 평범한 인간들이 평소에 이렇게 헛점 투성이인 상태로 중요한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이 세상이 망해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노릇인 거다. 더구나 그럼에도 인간 스스로가 헛점 투성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사람이니까 실수하지’, ‘사람이니까 불완전하지’ 하는 수준이 아니다. 적어도 이 말은 ‘그래도 중요한 일은 어느 정도 잘 하잖아’라는 생각이 깔려있는데, AI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수준은 정말 처참하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이렇게 허접하게 처리하지?’의 수준인 거다. 그것도 AI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이고, 지금보다 10년전 20년전 30년전엔 더 허접하게 일을 해왔고 그래도 별탈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왔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망해버리지 않은 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AI 덕택에 세상이 얼마나 더 좋아질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AI 덕택에 내가 ‘구제불능 실수/어리석음 투성이 휴먼’임을 깨닫게 되어버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