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널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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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희일비라는 말이 있는데 국어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내가 알고 있는 뜻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쁘고 슬픈 마음이 번갈아 일어난다 라는 뜻이 있는데, 내가 이해하기로는 매일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기뻐하거나 낙담하는 격차가 큰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신의 깊이라는 것이 얼마되지 않아서 마치 이것 저것 자기 맘에 안드는 것 때문에 울며 떼쓰는 어린아이에게 사탕 하나를 쥐어주면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하는 경우를 생각한 것이다.
나의 감정은 대부분 뭔가 침잠되어있다. 그러나, 속에서 끓어오르는 기쁨을 감출 수 없어서 피식 피식 웃음이 나던 시절도 나의 인생에는 제법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좋아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들떠서 주체를 못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석달 가까이 어둠속에 침잠되어있었던 적도 있다. 그게 고작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나야 말로 정신적인 것의 깊이가 낮아서 인생의 흐름에 있어 뜻하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도 무감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건의 결과는 부정적일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일 것으로 상상하며 기뻐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안좋은 상황이 보이면 급격히 낙담하는 스타일의 사람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일일히 크게 동요되지 않으려면 그 사건의 중요도가 내 인생 전체, 내 소유물 전체에 비해서 얼마나 비중이 있는지가 먼저 파악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이가 많아질 수록 가진 것이 많아질 수록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의 파급도라는 것은 점점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나 나란 사람의 생각의 깊이라는 것은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매우 사소하고 작은 일 하나까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를테면 나와 비견되는 누군가가 뛰어남을 보이는 것을 보고 그렇지 못한 나와 비교하며 (나는 절대로 저 경지에 이를 수 없을 거라며) 심하게 낙담하게 된다든가 고작 돈 몇 십만원을 갑작스러운 일로 날리게 되었는데 여러 날 곱씹어가며 아까와한다든가. 이와는 반대로 갑자기 뜻하지 않은 돈 수 백여 만원이 통장에 들어와 꽂히는 것을 봐도 무감각하게 느낀다거나 하는 걸 보면, 나는 주로 긍정적인 쪽 보다는 부정적인 쪽에 휩쓸려 사고하는 경향이 짙다. 긍정적인 결과는 늘 나에게 당연한 것으로서 전혀 감사할 줄 모르고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되어있고 그렇게 되게끔 살고 있는데 혹시라도 그것 하나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금전적인 손실이 일어나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다.
내가 몹시 힘들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모든 상황이 나에게 안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가진 것 조차 모두 빼앗길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와 질병이 일어나서 매달 그 손해라는 것이 어마어마했던 시절이 있었다. 원래 나에게 일어나는 자그마한 손실에도 민감했던 내가 이 시절을 버텨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사실 이런 일이 2년에 걸쳐 일어난 뒤에도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감각한 대신 안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예전보다 더한 낙담/다운 상태에 빠지는 경향이 있음을 주위 사람들로부터 관찰되었다.
나도 이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낙담하고 불평하고 한탄한다고 해서 절대로 좋아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이 애초에 습관화되어버려서 끊기가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습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고칠 노력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이것은 그냥 내가 그러한 원을 품었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안좋은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내가 평소에 갖던 감정의 정 반대 감정을 갖는 버릇을 꾸준히 들인다고 해도 쉽사리 고쳐지는 게 아니다.
대대적인 사고의 전환을 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런 전환된 사고가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으면 지금의 상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지 못한다.
나의 사고의 습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 무조건 이 사건은 불가역적/차후에 회복이 불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딱 한번 뿐인 기회를 실패로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한다.
- 왜 이런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왜 나는 그것을 막지 못했는지 나를 탓하기 시작한다.
- 나의 실수로 인해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나는 그 사건이 옳게 수습될 때까지 끊임없이 나를 공격한다.
- 나의 실수가 아니라고 해도 원인 제공을 한 것이 나 자신이므로 또 끊임없이 나를 공격한다.
- 스스로에게 공격받은 나 자신은 이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져서 온종일 우울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이미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사고단계 2,3,4,5는 의미가 없다. 쓸데없이 부정적인 면을 매우 과하게 증폭하는 것이다. 일부러. 그래야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믿음이 있는가보다. 어차피 일어날 사건은 일어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일어날 수 있음을 내가 전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것을 바로잡자면, 다음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어야 한다.
- 안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분명히 0이 아니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 비록 시간이 들어가긴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아무리 처참한 상황이라도 언제든 회복/개선할 수 있다. 그 또한 인생의 재미다.
-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책임자(=나)를 찾아서 공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감정을 가다듬어 재빨리 수습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게 뭔가를 할 수 있다면 해보는 거다.
- 원인 규명은 사실 하나마나다.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직관적으로 그 원인을 알 수 있으니까.
- 혹여 원인을 규명했을 때 내가 원인 제공을 했거나 그것이 나의 실수에 의한 것이라도 나란 존재가 완벽할 수 없으므로 나를 탓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건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 그 모든 것에 대한 손해를 극복해야 하는 사람이 다른 이가 아닌 나 자신이므로 먼저 풀이 죽은 나를 응원하고 실수하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노력만 기울여도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집에 있는 값비싼 물건을 뜯어보다 망가뜨린다거나 실수로 물건을 깨뜨리거나 했을 때 과하게 야단을 맞고 과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때가 제법 많았던 것 같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남의 집 아이가 같은 일을 저지르거나 했을 때야 말로 나는 어린 아이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한다는 거다. 다른 사람이 접촉 사고를 당해서 차를 수리하게 되었다거나 할 때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는 뭐든지 관대하려고 하지만 나 자신에게서는 그런 실수와 사고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내가 어둡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세상 그 누구에게나 원치 않게 안좋은 일들은 터진다. 재수 없으면 매일 같이 터질 수도 있고 대박 사건이 터져서 가진 것을 전부 날리게 될 수도 있다. 그 가진 것이라는 게 오랜 세월을 두고 차곡 차곡 모은 것이기에 날아갈 때의 느낌은 정말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없어졌다고 당장 내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다 없어진다고 한들 한동안의 불편함만 견뎌낼 수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이 있는 게 이 세상이다. 뭐랄까 이런 일이 발생하면 기나긴 인생의 레이스에서 뜻하지 않은 장애물과 충돌해서 선두레이스에서 쳐져서 맨 뒤로 물러나게 된 것 같은 느낌까지 받는다.
‘나는 무슨 일이 있든 선두그룹에 속해서 달려야만 하는데..그러기 위해서 끊임 없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게 다 인생을 너무 애쓰면서 살아온 결과인 거다. 너무 애쓰며 살아왔기에 뜻하지 않은 장애물에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듯한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정말 별 것 아닌 장애물도 뭔가 나에게 엄청나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만 같은 공포와 괴로움 때문에 위험이 예상되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계속해서 움츠리게 되는 것이다.
- 그러니까 인생을 너무 애쓰면서 살 이유가 없다. 어차피 ‘될놈될’이다. 애쓰면서 살든 애쓰지 않고 살든.
- 안좋은 일이 생기는 것, 삶에서 뜻하지 못한 장애물을 만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한 것이다. 억세게 운이 좋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자.
- 나의 인생 레이스라는 것은 나만의 것이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 재미와 행복이 가득하게 - 만족하면서 살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이 누군가와 경쟁한다고 하면 쓸데없이 애쓰게 되고 별 것 아닌 흔들림에도 소심해지고 어두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 행운이 일어나면 좋겠지만 행운이 없다고 해서 억울할 것도 없다. 어쩌다 횡재를 하게 되면 또 다른 횡재를 바라게 되지만 행운이 없으면 그만한 마음의 동요라는 것이 없을테니까.
지금의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새롭게 해석하기로 했다. 과거의 일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그 일들은 일어나야 했기에 일어났고 나는 그 일들을 수습하기에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그것들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고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인 거라고. 좋게 보면 좋은 일이고 나쁘게 해석하면 한없이 나쁜 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일어난 수많은 일들의 결과이고 힘든 일들은 힘든 대로 괴로운 일들은 괴로운 일들 대로 나에게 살아갈 굳은 살을 만들어주었다.
당장에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내가 세상에게 원했던, 일어나리라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더라도 오늘 당장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일어난 일이 씨앗이 되어 나중의 좋은 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렇게나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또 앞으로의 미래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냥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살아갈 뿐인 거다. 일희 일비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최선’의 ‘노오력’을 다하는 삶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