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좋아하나요?...

일본 사람들은 재즈음악을 아주 이른 시절부터 가지고 놀아서 그런가 그 사람들이 재즈를 배우는 책자들도 많이 만들고 그게 그대로 복사되어서 우리 나라 서점에서 팔리고 그랬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나도 autumn leaves라는 아주아주 옛날 노래를 알게 되었지 싶은데, 일본인들이 워낙 이 음악을 좋아했어서 그런 것인지 일본의 옛날 노래 중에 나름 인기가 있었다는 ‘위스키를 좋아하나요?’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뭔가 autumn leaves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이 만든 노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 사실 이런 진행은 6-7-80년대 대중음악 발라드에서 흔히 쓰이는 패턴이니까 뭐 내 생각이 틀릴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긴 하다.

한땐 저녁에 위스키 한잔 하이볼로 말아마시는 것 별 일 아니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을 좀 더 건강하게 살고자 맘먹고 나니 뭔가 이 호사스러운 행위(?)는 모두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술로 기분을 좋게할 수 있는 거라면 맨정신으로는 왜 못하나 하는 생각만 들고. 대학에 막 들어가서 술 냄새를 처음 진하게 맡아봤을 때의 느낌이 지금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대놓고 독한 향을 뿜어내서 몸에 안좋다고 신호를 주는 데도 이걸 ‘어른이 되기 위해’ 혹은 ‘어른 흉내를 내기 위해’ 마셔야 된다니!

당시에는 다들 아무 생각없이 살았구나 할 뿐이다. 공공장소에서도 담배를 심하게 피워대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저 다 저녁에 집안의 조명을 적당히 켜두고 반짝이는 잔에 얼음 넣어서 위스키 한 두잔 하고 있으면 뭔가 있어보이는 기분이 나게끔 광고를 잘도 만들어댔던 것 같고. 뭔가 그래줘야 나름 운치를 아는 사람처럼 느끼고 말이다. 사실 개뿔 지나고 나면 운치는 고사하고 두통이 오거나 밤새 알콜을 분해한다고 고생한 간 때문에 다음 날 무력감을 느끼고 또 그렇게 과음을 해서 피로감을 느낀다고 대놓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뭐랄까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세상은 술을 마신다고 하면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관리하지 못해서 물질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처럼 바라 보는 것 같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의지력이라든가 정신건강을 스스로 온전하게 관리 못해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술로 낭비하고 있는 사람처럼 바라본다고나 할까. 술을 마시면 남은 건강마저 야금야금 다 갉아 먹을 것 같아 겁이 잔뜩 난 내가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마음 속에 쌓아두고 있던 개인 문제를 소주 한잔 기울이며 나누고 서로 공감하고 도와주려하던 시절은 다 옛날이 되어버렸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아마도 겁이 덜컥 나지 싶은데.

그래서 저녁에 반주를 한다 혹은 어제 과음을 해서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어쩌다 들으면 ‘대단하다’라는 생각밖엔 안든다. 아무리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해도 건강을 생각해서 한달에 한 잔 마실까 말까한다면 과연 그게 좋은 기분을 가져다 줄까? 술도 마셔본 놈이 안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다 한달에 한번쯤 물같이 느껴지던 라이트 맥주를 모금 마셔도 좋은 기분보단 입속과 머릿속이 지저분해진 느낌이 남는데. 지금은 어쩌다 한 모금을 마시기에도 너무 쓴 IPA를 음료수처럼 거의 매일 같이 여러 개씩 마셔대던 시절의 그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고 해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