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히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구나...

초중고 과정 같은 게 있고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 항목 별로 시기별로 시간별로 나누어져있다보니 해당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맞으면 뭔가 내가 그 과목에 대해서 어느 정도 마스터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그리고 대부분 좋은 점수를 받았다면 이 시기에 받아야 할 교육 과정을 마치 통달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듯이. 그래서 그런가 내가 학부과정을 졸업할 때만 해도 내가 이 세상에서 못 할 것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대학원에 진학해서 정해놓은 책을 보고 동료들과 연습문제라든가 실험과제들을 하고 논문들을 읽다보면 박사과정까지 마친다고 해도 내가 쳐다보는 영역은 전체 학문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데, 그 안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책들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고 논문도 그 논문이 의도하는 내용의 1/3 정도 느껴보고 내가 읽을 수 있는 논문의 수라는 것도 정말 얼마 되지 않겠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서는 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어디가서 내가 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긴 창피하다, 그런데 졸업을 피할 수가 없네 하는 생각을 했다.

삶은 그런 순간들의 연속이다. 뭔가 내가 굉장히 잘 하는 구나 생각하기가 무섭게 나는 곧 위를 올려다보면서 내가 뭘 하든 이 세상에서 내가 하고 있는 뭔가를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정말로 엄청나게 많고 그들의 수준을 전부 랭킹을 내보면 나는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정도라는 것에 낙심하고, 또 도무지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초야에 묻혀서 칼을 갈고 있는 고수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인가 한탄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를 정해서 끊임없이 하다보면 그 수준과 랭킹이란 게 점점 높아져서 그래도 뭔가 남을 감동시킬만한 경지에 오를 거란 생각은 못 했다. 먼저 낙담하고 하던 것을 내려놓거나 하는 것으로 쉽게 끝나버렸던 거다. 어떤 것을 배우고 훈련하든 끝이라는 것은 없고 평생을 두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고 하루 하루 변화해가는 스스로를 보면서 만족을 얻는 것이지 단시간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월드 컨테스트에서 우승을 하고 내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시작이 무색하게 곧바로 놓아버리고 나서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누군가가 여전히 초보자의 수준에 머물고 있더라도 끊임없이 붙잡고 있더라도 나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이를 만나게 되면, 아니 그것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초반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니 진작부터 때려쳤던, 그래서 초보자라고 하기도 뭐한 수준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보여서 다시 시작해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된다. 왜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해놓고 끝을 맺진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붙잡고 있는 것을 제대로 못하고 이러고 있을까 자학하기도 하고.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쉽게 배워서 쉽게 마스터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과 사람이란 존재가 능력이 미천하여 원하는 대로 빨리 배우고 마스터할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꾸준히 붙잡고 있으면 적어도 나 자신에게 감동을 줄 수준의 단계에는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싶다. 뭔가 배워가는 진도가 스스로의 욕심에 미치지 못하면 소질이 없다고 관두고 또는 어느 수준 이상 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스로의 수준을 검진하려고 보니 허접한 모습만 나왔다거나 하면 쉽게 낙심하고 관두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마스터라느니 어떤 단계의 등급을 먹이고 수준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좋지 싶다. 그냥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그래서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이 붙으면 흥미를 느끼고 매달려 볼 수 있게 되고 하는 거지. 그리고 누가 뭐라든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잘 되든 잘 되지 않든 무조건 놓지 않고 진득하게 해보는 거다. 누군가는 시작해서 한 두달에 이를 경지를 나는 1-2년이 지나도 지지부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요 근래에는 나 스스로 이런 저런 부족함을 느끼고 온라인 코스도 들어가서 배우고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여태 한 번도 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데, 적어도 이렇게라도 하면 스스로가 나태하게 늘어져있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싶은 생각도 있고 내 스스로의 수준으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장애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뭔가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함인지 대부분 과정들의 이름은 거창하고 그 과정을 마치면 적어도 뭐라도 얻어건져서 나 자신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생각으로 한번도 빠짐없이 들어가서 했지만, 막상 과정을 마칠 때 쯤엔 ‘도대체 내가 이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것이 뭔가’, ‘뭔가 좀 진지하고 열을 다해서 했다면 건졌을 것을 나만 가져가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만 가지고 마무리했다.

만일 10년전 20년전의 ‘나’ 였다면 이 지지부진한 일을 어차피 해도 잘 안될 걸 뭐하러 했나 하는 생각을 했거나 중도에서 때려쳤을 가능성이 높다. 글쎄 지금의 나는 그래도 짧은 기간의 과정이었고 고작 한달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예전과는 다른 미세한 차이를 느끼고 있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악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들리던 소리와 1-2년 지난 후에 들리는 소리들 (그리고 좋다고 느껴지는 음악들이 달라진 것처럼) 의 느낌이 달라졌듯 말이다.

그러니까 과정의 이름이 거창하고 그 세부항목들의 제목들이 너무 거창하다보니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은 착각(?)을 하지만, 그리고 열심히 과정을 이수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고작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이라는 거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라는 게 나 자신에게 어떤 씨앗이 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준다. 어차피 내가 이 과정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미묘한 차이마저 얻지 못했고 그렇게 그렇게 그것도 모른 채로 살아갔을 거란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생겨난 미묘한 차이들이 쌓이고 쌓여서 시간이 흐른 뒤엔 큰 격차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나는 여태 이렇게 살아오면서도 몰랐던 거다. 학창시절에 내가 남들보다 조금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따져보면 매일 매일 쌓인 그 미묘한 차이 때문인 것인데, 남들보다 머리가 좋거나 뛰어나다는 착각을 하면서 살았다.

고작 그 약간의 차이를 얻고자 그 많은 노력을 해야 되나? 가 아니고 그 약간의 차이를 얻어내는 데도 미천한 능력의 인간으로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렇게 뭔가를 얻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그것들을 놓아버리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래서 능력이 미천하다 생각되면 생각될 수록 계속해서 듣고 배우고 생각하고 훈련해야 한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근손실도 근손실이지만 매일 매일 일어나는 지적인 능력, 정신적 능력의 손실도 신경 써야 하는 거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란 존재의 능력이 허접하단 것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이렇게 신경쓸게 많은 데 어차피 잘하지 못할 바에야 그냥 아예 모든 욕심을 놓아버리고 그냥 지금의 수준으로 살아가야지 하고 만족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내가 만나본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란 존재가 이미 여러 모로 충분히 훌륭해서 그냥 그대로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을 선호했다. 괜히 나처럼 스스로 모자른 점을 찾아내어 어떻게든 개선해보려고 하면서 괴로움을 받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라며. 왜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괴롭히느냐. 지금의 자신은 충분히 훌륭한데. 왜 그렇게 자신이 없고 부정적이고 sarcastic하느냐. 스스로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기준이라는 것도 자신의 어떤 수준에 따른 것이니까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누가 뭐라든 상관없지 싶다. 자신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