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떠날 운명인가?...

떠나고 안 떠나고 한다는 것도 스스로 만들어낸 개념이라 뭐랄까 슬퍼하거나 어두워져야 할 것이 없는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 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늘 같이 있었을 땐 소중함 따위 있는지도 몰랐고 뭔가 애틋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떠난다 라고 하면 뭐가 그리 아쉬운지 울진 않아도 눈시울에 뭔가 고이는 것처럼 되어야 인정머리 있는 사람일 것 같고 그런가보다. 어딘가로부터 떠나와서 영영 이별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인연이 된다면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세상이란 게 좁다는 게 재밌기도 하다.

나와 남이라는 개념도 내가 지어낸 것이니까 아니면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보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다 싶어 습관처럼 굳어졌으니까.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유사한 시기에 살아있었기에 만나고 알게 된 것일 뿐, ‘나’와 ‘남’이란 것도 그 경계라는 것도 애매하기 짝이 없긴 마찬가지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서로의 자유를 인정해주어야 살기 좋아지니까 그렇게 하고 있을 뿐. 하지만 뭐랄까 인간 이하의 수준을 가진 이들과 마주할 때 내가 입는 데미지를 생각하면 낯선 누구, 오래 알았던 누구라도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 경계라는 것, 인연이라는 것 등등을 생각하면 만나고 이별하는 것도 특별히 그렇게 규정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규정해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

나란 사람은 오랫동안 좁은 세상만 살아왔어서 누군가 내 삶이라는 무대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무대가 이곳 저곳 바뀌다보니 엑스트라들의 수는 꽤 많았겠지만. 그래도 엑스트라라고 보기 어려운, 그러니까 나름 뭔가 인터랙션이 있었던 사람들의 변화는 주로 회사 생활에서 나타났었는데, 이들과는 별 다른 만남과 헤어짐의 의식(ceremony)라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살면서 이곳 저곳에서 다시 만나는 일이 제법 있었다. 퇴사를 했다고 헤어지거나 떠나와지는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나 나나 뭐랄까 유사한 지역을 흘러다니는 부유물 같아서 세상의 변화가 있을 땐 평소보단 좀 빈번히 움직임이 있다가 다시 조용해지면 같은 곳에서 맴돌고 있고 그런 거다. 그러니까 세상의 변화라는 게 급격히 일어날 땐 얘기치 않게 서로 만나게 되는 거다.

몇 년 전쯤인가, 아 생각해보니 거의 6년반쯤 된 것 같다. 동부로 출장을 다녀오라고 해서 국내선을 타고 미국 중부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상공에서 바라보는 이 지역은 중부와 서부를 나누는 높은 산맥들이 널려있는 곳이었다. 뭐랄까 광활해보이기도 하지만 뭔가 너무 높은 지대이다보니까 기후가 굉장히 좋지 못한 것이 상공에서도 너무 확연하게 보이는 그런 곳이라고나 할까. 뭐랄까 예전에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보면 여간해선 트롤들도 출몰하지 않는, 그러나 그 지역을 여행하면 health가 심하게 깎여나가는, 어쩌다 적이 나타나면 나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거물들이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곳, 그런 ‘땅’ 같아보였다. 무슨 인연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살고 있다면 내가 알았던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다시 만날 일이 없는 곳 말이다.

그러니까 지구의 표면적이 아무리 넓다고 하더라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면서 최소한 한번이라도 내발을 딛고 지나게 되는 곳은 지극히 좁은 범위로 국한된다. 그안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 또한 그 좁은 영역에서 움직이게 되니까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살면서 (나는 알지 못하지만) 여러 번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인생의 어떤 시점에선 모르는 사람으로 있으면서 근처에 머물고 있다가 어떤 시점에는 엄청나게 가까운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영역 자체가 달라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도 영영 만날 리 없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런 곳에 살다가 어쩌다 한국에 가보면 소위 ‘지방’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가봐도 ‘지방’이란 생각이 안들고 모두 좁은 ‘대한민국’에 속해 있는 동네(?)쯤으로 보여지는 거다. 그러니까 예전 내가 어렸을 시절에 버스 몇 정거장, 혹은 전철역 몇 개를 지나가다보면 나타나는 새로운 분위기의 동네. 그래봐야 고작 전철역 몇 개 거리 밖에 안되는 곳. 잘해야 서울 인근의 지역, 수도권이라고 불리우는. 그런 곳 말이다. 평생을 가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부산이라든가 여수/목포 같은 곳이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직 인간이 멀리 갈 수 있다고 해봐야 달 정도 가본 게 전부라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진짜 인간이 달에 갔다왔는지 어쨌는지는) 그 정도 다녀오고 나면 뭐랄까 이 세상이 정말 작게 느껴질까? 고작 미국에 좀 살아보고 몇 군데 살짝 다녀와본 것만으로 끝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한민국이 예전에 내가 알던 서울과 수도권지역 쯤으로 느껴지고 있으니 말이다.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든, 직장을 옮기게 되든 하는 일은 매년 일어나진 않겠지만 내겐 대부분 10년이 못 되서 한번씩은 일어났다.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그걸 인연의 평균적인 체류 연한이라고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회사에서는 6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회사에 무슨 사정이 있든 내 개인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든 그 인연의 연한이 다해가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곧 떠나게 될 곳이니 정을 떼자 라는 게 아니라 떠나갈 시간이 가까와질 수록 더욱 정겹고 소중하단 생각이 드는 거다. 실제로는 내가 어디서 어떻게 머물렀든 떠나게 되든 그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이곳에 처음 와서 내가 앉을 자리를 미리 정돈하고 동료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던 일들이라든가 하는 것을 떠올리면서 그 때의 내 ‘감정’을 떠올리며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인연의 변화를 또 실감한달까?

어떻게 보면 나란 사람이 너무 순진하고 어리숙한 것이 감사하기도 한 것이, 새로운 곳에서 뭔가를 시작할 때 언젠가는 다시 그곳으로 부터 멀어지게 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뻔한 이치임에도 말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현재에 집중하는’ 성질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니까, ‘새로 시작한다’하면서 뭔가 의지를 다잡고 매일 매일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어떤 것이 영원히 갈 것처럼이나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시작’하는 마음이 아무리 소중했다 하더라도, 또 매일 매일 퍼붓는 나의 시간과 노력이 아무리 치열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자의/타의에 의해서 끝을 보게 될 것이 너무 뻔한데, 마치 영원히 이것을 하면서 있을 것처럼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모든 생각과 의지들이 실재하지 않는 그냥 어리숙한 중생이 품은 어떤 (허)상에 비롯된 것임을 생각하면 길다면 길다고 생각하는 인생도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흘러가는 짧은 꿈에 불과하고 왜곡된 실체의 모습으로 자신의 머리속에 떠올려진 어떤 상에 따라 울고 웃고 화내고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존재의 생과 멸일 뿐이라고 보면 그런 나에게 과연 진정 나에게 의미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봐야겠다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