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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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을 객관적인 것인 양 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것은 이래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이라든가 규칙, 기대 같은 것을 하는 것을 말한다고 나는 이해한다.
설날에는 친척들이 다 같이 모여 화목하게 제사드리고 맛있는 떡국을 먹어야 한다는 기대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도 ‘상’에 해당한다. 실상은 친척들이 다 모이지도 않을 뿐더러 모여도 화목할 수도 있거나 아닐 수도 있고 되려 싸움이 날 수도 있고 예전처럼 힘들게 제사를 드리려고도 하지 않고 떡국은 불어텨져있을 수도 있고 맛없게 끓여졌거나 귀찮아서 안 먹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빠짐없이 만족되어야만 ‘설날 다운 설날’을 보냈구나 한다면 괴로움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세상 것들에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아예 상 같은 게 없어야 한다. 설날이라는 특별한 날이 있다는 생각까지 버리면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다.
예를 든 게 ‘설날’이라서 좀 이상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상을 지어왔고 그 때문에 힘들었기 때문에 무엇이 상이고 무엇이 상이 아닌지도 잘 분간이 안될 때가 있을 정도다. 가까이에서는 삶의 모든 일들에 자신 만의 상을 짓고 그게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적으로 괴로워하고 그것을 타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는 사람까지 봐 왔다.
그런데 흔히 사람이 힘든 지경에 빠져서 별 다른 희망이고 뭐고 없는 지경이 되면 스스로 이런 ‘상’을 무너뜨려 ‘성숙해진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해버려서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경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물질적인 풍요를 기대하지 않게 되고 또 힘든 시절에 주변사람들이 떠나게 되면 인간관계라는 것이 오직 이해득실로 돌아갔구나 알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듯이 말이다.
사람이란 게 그렇게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기대까지 잃게 되었지만 실낱같은 희망이라든가 시간의 힘으로 약간이나마 뭔가를 손에 넣게 되었다고 생각되면 또 다시 오만해져서 욕심과 상을 짓게 된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었던 상황에서 소중한 무엇인가를 뜻하지 않게 얻게 되었다면, 아니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났는데 옷 한 조각이라도 걸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할텐데 말이다. 그렇게 매일 매일 감사하다보면 행복에 겨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닐까?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 다행일 줄 알았던 사람들이 나에게 잘해준다면 또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가? 누군가에겐 주어지지 않은 하루 하루가 나에게는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다는 자체도 감사하고 행복해야할 일 아닌가?
최근엔 회사/잡마켓 상황이 안좋아져서 슬슬 이력서를 주물럭 거려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그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데, 이 또한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한 어떠한 상을 지어놓았기 때문이라고 또 알아차리게 된다. 영원한 거란 것도 없고 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란 게 있고 또 이렇게 되다가도 쓰임의 인연이란 게 있다면 또 나는 바쁘게 무엇인가를 하게 될 것이니까 나는 조금도 일희일비할 게 없다. 제행무상이란 것도 있고 제법무아이기 때문이다. 놀게 되면 놀게 되는 대로 바빠지면 바빠지는 대로 난 나 그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면 그뿐인 거다. 내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리든 아니면 최상의 상황을 가정하든 내게 그런 인연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것들은 다 허튼 생각/상에 불과하다. 그렇게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나만의 상을 짓고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여러 가지 현실을 불만스러워 하면서 살았던 시절이 꽤나 길었다. 꼭 뭐 하나라도 내 생각대로 안되면 펄펄 뛰고 잠못자고 조바심내고 살았던 시절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아가든 그냥 오늘 하루 하루 나에게 주어진 인연대로 자유롭게 나의 진심을 다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살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