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토 비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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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정식으로 (그러니까 장기 체류 비자를 받았으니) 이민와서 살다보니 가스 활명수 같은 게 생각나는 경우도 맞이하고 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pepto bismol이라는 걸 사다먹으란다.
막상 구입하고 보니 독특한 파스맛?에 매우 탁한 (현탁액?) 액체로 되어있는 것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설사라든가 heartburn (위산이 역류해서 식도와 위의 경계부분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 또는 현기증(nausea) 또 소화불량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다만 현탁액을 구성하는 성분 중에 마그네슘이나 알루미늄같은 경금속이 위산과 반응해서 전체적인 산도를 낮추는 것은 가능하겠구나 했다. 그러니까 잘 해봐야 예전 속이 쓰릴 때 먹는다는 겔포스? 알마겔?과 같은 제산제 역할이나 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막상 속이 답답하다는 사람은 맛이 특이해서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이민 온지 한참 지나고 나서 속이 더부룩한 느낌도 있고 배도 고프지 않고 배가 불러있는 느낌이 강해서 한번 사다 먹어봤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맛이 낯익다고 해야할까? 그렇다. root beer 맛이 나는 거다. 뭔가 걸쭉한 root beer를 먹는 느낌이랄까?
새로 나온 것은 ultra라 기존 제품의 1/2 용량(15ml)만 먹으면 된다는데 15ml에 대한 감이 없어서 살짝 마셔보고 나니 354mm짜리 용기의 들어있는 액체의 1/4 정도 마셔버렸나보다. 많이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현탁액 성분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 변비증상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인데, 어쨌든 그렇게 됐다.
뭐랄까 예전 살지 않던 새로운 곳에 사는 것도 시간이 길어지면 마치 그곳에서 오래 살았던 것과 같이 되나보다. 처음엔 기가막히게 이상했던 상황이나 풍경이나 맛이나 점점 익숙해진다.
난 이곳에 온 지 1-2년 동안 아니 그 이상의 기간동안 나와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밥도 먹고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분위기에 적응이 안되어 꽤나 심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왜 이게 나한테 힘든 것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익숙하던 것과 멀어지면 위협을 느끼게 되는 인간의 본능과 싸우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마치 하루 하루를 해외 출장을 나와있는 듯한 긴장감 속에 보내야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곳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인종과 다른 인종인 것도 불편하고 그들과 100%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도 답답하고. 때론 화가나고. 그런데 이것도 나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어쩌라고?
그 모든 것은 그냥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어떤 ‘상’ 때문이었던 거다. 마치 어떤 땅에는 어떤 인종만 살아야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이 100% 클리어하게 이루어져야만 되고 등등. 실제로 어느 세상에서도 그런 건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100% 클리어한 의사소통 따위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아무리 가까운 동일언어를 구사하는 네이티브 간에서도. 너무나 뻔한 단문으로 의사를 소통할 때나 가능할까. 그것은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도 가능하다. 영어가 아무리 서투르다고 하더라도. 더구나 지금은 외부인이 유입이 크게 늘게 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다보니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의 비율이 크게 줄고 대부분이 이민자인 (원래 살고 있던 사람도 따지고 보면 다 이민자, 이민자의 후손이다) 상황이니 그냥 나도 그들 중에 하나 뿐인 거다.
지금은 되려 한국에 가 있을 때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 내 귀에 잘도 와서 꽂히는 상황이라서 말이다. 아무도 내가 말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누군가 듣고 있으리라는 것에 개의치 않는 상황이지만. 그냥 그렇게 나의 생각이나 정보가 또 다른 이들의 생각과 정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쉽게 공유가 되고 있는 상황이 뭐랄까 비밀번호를 풀어놓은 wifi로 통신을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랄까? 신기하게 한국에도 이민자/장기체류자/여행자의 수가 늘어서 어떤 곳에 가면 여기가 내가 알던 한국인가 싶은 곳도 있다. 되려 이런 곳에 가면 뭔가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다. 이미 그런 세상이 된 거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미 수많은 문화들이 공유되고 있는 것 만큼이나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 저곳을 오가고 장기로 체류하고 하는 시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