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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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5년 전쯤이었을까.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감정 변화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건 상황이나 시간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다는 뜻일 텐데, 내가 사람인 이상 아마도 그럴 리는 없었을 거다. 어쩌면 나는 감정 변화에 둔감했거나, 변화 속에 푹 빠져 있어서 정작 나에게 어떤 감정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부터였을까. 나는 매 순간 내 감정의 변화를 의식하고 추적하는 걸 즐기게 된 것 같다. 어떤 조건에서 내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지를 알고 싶어 했고, 그 인과관계를 찾아내고자 했지만 불행히도 아직 뚜렷하게 밝혀낸 건 없다.
그러니까, 기분이 좋아질 때 그 이유가 뭐였는지, 나빠질 때 또 왜 그랬는지, 뚜렷한 설명을 찾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신체에 큰 통증이 있을 때는 감정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를테면 몸살이나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그 순간의 나라는 존재는 온통 ‘몸’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그나마 감정을 돌볼 여유가 생기려면, 최소한 ‘살 만한 상태’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1~2주는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몸도 무거워져서, 이렇다 할 삶의 의욕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너지진 않았다. 장을 보거나 집 청소를 하거나, 평소처럼 운동을 하는 등의 기본적인 일들은 비교적 꾸준히 해냈다.
다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곧장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기보다는 좀 더 침대에 누워 있으려고 했다거나,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잡생각에 빠지거나, 쓸데없이 미래에 대해 민감해져서는 실행하지도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괜히 답답해하는 날들이었다.
그런 날은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마음속은 흐리고, 세상에서 혼자 고립된 듯한 느낌이 짙게 깔렸다.
그런데 오늘은 한동안 감정의 몸살을 앓고 난 직후라서 그런가, 어제까지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싹 사라지고, 해야 할 일들에 정신이 팔려 있다. 불안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떠올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시도를 하면 내 안에서 “왜? 그런 생각 해서 뭐하게?”라는 반문이 되돌아온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왜 나는 이 답답한 삶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들에 잠겨 있었는데 말이다.
신기하게도 오늘은 갑자기 내게 남아 있는 여러 좋은 것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감사한 마음이 들고, 조만간 생길 좋은 일들에 대한 기대감도 생긴다. 회사 일을 마치고 나면 재미있게 해야지 하고 계획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기분 좋은 에너지가 스며든다.
예전의 생활을 떠올려보면,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그 사람의 기분에 맞춰 조심조심 살아가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모두가 편안했고, 그 사람이 예민하거나 침울하면 하루 종일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다. 언제 폭발해서 자신이 기분 나빠진 이유가 바로 나 때문이라고 할지 모르니까. 1년 전체를 돌아보면,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고, 그래서인지 그냥 아무 일 없이 하루를 편안하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1년에 얼마 안되는 ‘화창한 날’을 경험하는 기분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마다 나는 타인의 감정과 나 자신의 감정을 분리해서 느낄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매일 매일을 즐겁게 살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말을 미성숙의 증거처럼 말하지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옆에서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그런 ‘분위기 파악 못하는 능력’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뛰어난 생존기술인 것이다.
그리고 감정 기복이 심한 늬덜은 마음 공부를 하든지 약을 받아 드시든지 제발 좀 민폐끼치지 말라고! 늬덜 때문에 하루 내내 기분 망치는 경험이 일상화된 우린 무슨 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