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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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즌마다 돌아오는 4일 연휴다. 금·토·일·월, 이렇게 나흘을 쉰다. 사실은 공휴일에 이틀을 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덕분에 긴 숨을 고를 기회가 생긴다.
늘 이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는 자책, 할 게 없는 상태로 나를 방치했다는 생각에 마음 속으로 날 나무란다. 그런데 그냥 마음을 비우고 그냥 편히 지내다 보면 이래 저래 나름 의미 있는 일로 채워지곤 한다.
노는 날이 되어 딱히 할 게 없다 싶으면, 그동안 내버려두었던 집안 일들이 눈에 보이고 이것 저것 찾아서 해치우다 보면 이래 저래 하루가 간다. 시간이 남는다, 여유롭다라고 생각하니 예전에 머리 속에 넣어두었던 일들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하나 둘 씩 해나가다보면 연휴도 금방 지나간다.
이렇게나 조건이 되면 그에 걸맞은 일이 일어난다. 아무 생각 없이 있어도 일어날 조건이 되면 일은 일어나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바라더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고, 돌아보면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일을 입맛대로 꾸며놓고 후회하며 괴로워한다. 맨정신에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사실을 쉽게 잊고 또 다시 어리석음에 빠져 괴로움에 허우적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함께 잘 지내고, 떠나보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조건이 맞으면 만남이 찾아오고, 그렇게 잘 지내다가, 조건이 틀어지면 떠나간다. 그렇게 올 인연은 오고, 적당히 머물렀다가 갈 인연은 간다.
조건이 안 되었는데 누군가 다가오길 바라거나, 조건이 안 맞는데 잘 지내길 바라거나, 조건이 되어 떠나가는데 붙잡으려 하는 건 어리석다 생각해도 삶에서 여러 번이나 반복됐다. 찾아온 인연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어긋난 인연을 두고는 애먼 상대나 자신을 탓한다. 떠나간 인연에도 분노하고 원망을 쌓는다.
그러나 내게 일어난 일은 그저 조건이 맞아 일어난 것이고, 사라진 것도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때마다 억울함이 올라오고 짜증이 치밀어도, 그것은 내게 남아있는 오래된 습관일 뿐이라 마음의 흔들림 없이 그저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다.
세상이 물리 법칙대로 움직이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내 삶에 닥친 일에는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고 그것이 좋고 나쁨의 의미를 갖는다며 딱지를 붙여놓고 기뻐하거나 괴로워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 삶의 순간들을 그렇게 구분해 온 것이다.
심심할땐 재미 삼아 그것들의 의미를 반대로 붙여보기도 하고, 아예 딱지를 떼어보기도 하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나름 큰 변화를 느껴볼 수 있다.
매일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라도 조금은 다른 맛으로 살 수 있다. 기왕이면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다’라고 붙여보는 게 더 재밌다. 그동안은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라는 생각으로만 살아왔으니.
짜증나게만 생각했던 4일의 연휴도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의 한 순간일 뿐이다. 누군가 쉬는 것으로 정해놓은 휴일이니 특별히 좋을 것도, 날 할 일 없게 만들었으니 나쁘다고 것도 없다. 내가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며 재밌게 보낼 수 있어서 좋은 것이고,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눈치 볼 필요 없어 좋은 것이다.
짧게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잊고 지냈던 세상과 사람들을 마주해 좋고, 가지 않으면 돈 굳고 피곤할 일 없어 좋다.
나쁜 점을 찾는 것은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는 동안 정말 열심히 잘 해왔으니 앞으로의 삶에서는 더 이상 열심히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