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보다가 발끈해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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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이렇다. 40대+에 혼자 살면 안 좋다는 것.
유튜브를 보다 들은 이 말에 실소가 터졌다. 세상을 얼마나 곱고 순진하게 살아왔으면 저런 소리를 당당히 할까 싶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곁에서 잔소리할 사람이 없으니 생활 습관이 망가져 건강을 해치기 쉽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기댈 곳이 없다는 거다.
글쎄, 삶은 철저히 ‘사람 바이 사람’이다. 혼자 살면서도 자기 관리에 엄격한 이들이 차고 넘치는 반면, 기혼자 중에도 가정 불화 때문에 매일 술에 의지하며 몸을 망치는 이들은 부지기수다.
묻고 싶다. 기혼이라고 해서 부모를 여읜 슬픔을 배우자에게 온전히 기댈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내가 약해졌을 때, 배우자가 늘 한결같은 버팀목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이제는 둘이 살든 혼자 살든 ‘각자도생’의 시대다. 10년, 20년을 함께 했어도 배우자 역시 결국 타인일 뿐이다. 내가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해서 상대도 똑같이 응답할 거라는 기대는 어쩌면 위험한 환상이다.
건강을 위해, 고독사를 피하기 위해, 혹은 노후의 보살핌을 위해 결혼해야 한다는 논리는 너무나도 빈약하고 naive하달까.
인생은 결국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길이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싶어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지 마라.
멀쩡히 결혼하고도 이혼하는 커플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사람의 지능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선택을 했단 말인가? 관계의 유효기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구시대적인 잣대로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그 오만함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외로움이 싫어서 누군가를 한동안 만났다가 헤어지고 좀 지나고보니 ‘being alone is blessing’이란 걸 다시금 알게 된다.
그래도 가끔씩 ‘그 누군가 있었다면…’ 하게 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누군가는 환상속의 존재일 뿐이다.
내가 필요할 때만 잠시 내 곁에 있다가 필요 없으면 사라지고 늘 내 맘을 잘도 알아주고 나한테 자신의 짐을 얹거나 하지 않는 그런 존재.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내가 아쉬워 누군가를 만나는데 그 누군가는 아쉬운 데가 없으면서도 날 만날까?
결국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거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