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되어가는 나...

한동안 비대해진 자아 때문에 스스로를 옥죄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이 한없이 여유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슨 이유에서인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추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일과 중에 장도 보러 다니고, 일부러 먼 길로 돌아오고, 다시 사람들을 관찰할 여유도 생겼다. 그런 여유로운 삶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강박 — 잘해야 한다는 강박, 남들은 다 엉터리라는 생각, 그러니 내가 대신 짐을 져야 한다는 생각 — 이 전에 다니던 어떤 회사에서 쌓인 경험들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이 이후 삶 전반에 걸쳐 이어져온 것이다.

처음부터 혼자 다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일도, 여러 사람이 들어와 판이 커지면 결국 원하는 결말을 만들기 위해 막판에 혼자 개고생하게 될 것 같은 그림만 그려졌다. 미리부터 내가 그들의 짐을 결국엔 다 맡게 될 것 때문에 괴로워진다. 하지만 그 일의 책임이 내게 있든 없든, 내가 해야 할 일의 명확한 경계만 긋고 살면 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그 모든 힘듦도 결국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더 정확히는,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 속에서 심어진 나쁜 기억들 — 부정적으로 해석된 경험들 — 로부터 온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짐을 나눠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싫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망하든 말든. 이것이 길진 않지만 묻지마 분할매수(?)가 나에게 가져다 준 자유다. 물론 오랫동안 나란 사람의 관성 때문에 깨닫지 못했지만.

나 처럼 고지식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힘들면 싫다고 하고 지친다고 해야 한다. 모든 걸 혼자 짊어진다고 해서 다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짊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것도 아니라고. 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살아도 세상은 어떻게든 다 살아진다고.

요즘 회사에 신규 입사자가 늘었는지, 어려 보이는 얼굴들이 제법 눈에 띈다. 상태가 좋지 않던 작년까지만 해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는데. 그들의 표정에는 짐짓 대단한 각오가 서려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분야를 일궈서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보겠다는 각오.

반면 나이가 있는 이들의 얼굴은 멍하거나 초점이 없다. 뭘 그리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대충 살아도 되는 세상이고 대단한 존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단 걸 알고 있기에.

그 나이의 나는 전혀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힘주지 않고 그저 야금야금 분할 매수하듯 살면서, 그렇게 10년 20년 대충 버티다 보면, 나보다도 훨씬 이른 나이에 나처럼 회사안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이런저런 뭔가를 분할 매수하듯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 힘을 줘서 잘 하려다 보니 — 마치 과하게 힘을 줘 글씨를 쓰면 연필심이 부러지듯 — 삶의 경로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여러 번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부터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우고 공을 들여 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결국 언젠가 원치 않게 전부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리는 것처럼.

진짜 잘하고 싶다면 힘 빼고 살아야 한다라고 해주고 싶다. 특정 뭔가를 열심히 한다고 할 게 아니라. 힘들면 드러누웠다가 일어나도 되고 울다가 와도 된다.

긴긴 시간 살다보면 세상이 뒤집히는 꼴은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시작이 좋지 못했다면 오히려 좋은 거다. 언젠간 빛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단 거니까. 물론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를 맞기도 하고 그보다 더 엄청난 인간 풍파를 맞기도 한다. 그게 삶이다. 내가 잘한다고 피할 수도 못한다고 늘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삶이 주는 밥상에서 반찬 투정하지 않고 이런 저런 맛을 음미하며 힘빼고 살다아가다 보면 그렇게 밥숟갈 놓게 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