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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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부지런히 적는 이유는 오직 하나 뿐이다. 내가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싶은 것.
내가 나의 감정을 관찰하게 시작된 뒤로는 이 감정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캐는 것이 하나의 재미가 되었다.
기분 좋고 즐거운 감정은 구태여 분석할 이유가 없지만 그 외의 감정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기에 그것의 싹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캔다.
대개의 안 좋은 감정들의 뿌리는 불안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그것이 매일 매일의 나의 생활의 폭을 결정한다는 것을.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불안이란 것은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 특히나 그것이 죽음이라든가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는 것이 아닌 수치스러운 상황이 되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되는 것,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거짓말을 한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 무능력한 또는 값어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다.
대개의 경우는 실현 불가능한 상황이고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을 맞이한다고 한들 나에게 별달리 큰 해를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이민까지 와서 살고 있는 마당에 동네에서 망신을 크게 당한다거나 하는 일 조차 나에게 일어나기 힘들다. 하물며 회사나 내가 속했던 사람들의 모임에서도. 당해봤자 길어야 1-20분 정도일테고 더 나아가서 범죄를 저질러 체포당하거나 할 일은 더 일어나기 힘들다. 만일 그런 일이 엄청나게 낮은 확률로 일어났다고 한들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봐야 고작 추방 당해서 언젠간 돌아가리라 마음 먹었던 내 고국으로 가면 끝이다.
글쎼 이것은 뉴스에 나올만한 거리도 되기 힘들지 않을까? 설사 그랬다고 한들 내가 누군지 알아볼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것이 날 평생을 두고 따라다니며 힘들게 할 일도 없다.
별 것 아닌 실수 한번으로 ‘나락’가는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어나기 힘들다. 반대로 원치 않은 불의의 사고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저세상 갈 확률이 차라리 더 높지 않을까? 또는 급작스러운 질병으로 고생활 확률도. 그러나 이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나에게 딱히 별 다른 두려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존재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 사고나 질병 따위보다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니.
나는 왜 이런 상황을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 불안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