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혹은 미래의 날짜로 블로그를 적어본다면...

요샌 하루에도 2-3개씩 적어서 올리는 날이 있으니까 아마도 그만큼 잉여력이 폭발하거나 심심하거나 심경의 변화가 다양하지 싶다.

일단 글을 시작하려면 파일을 하나 만들고 그 안에 내용을 적어넣는 과정을 거쳐야하니까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오늘의 날짜와 기록할 내용의 요약을 사실상 미리 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보면 꼭 구태여 오늘의 날짜를 적어서 오늘의 생각임을 규정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과거나 미래의 날짜로 적어본다면 어떤 생각일까?

살면서 뭐가 현실인가 현실이 아닌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곤 하는데, 그마저도 알고 보면 나란 사람의 머리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가공하거나 왜곡시키는 것들이 대부분이니까 뭐가 실체이고 뭐가 가공이든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글을 적고 있는 동안 뭔가 더 재미있는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면 그나마 좀 색다른 시도가 아닐까 하는 것일 뿐.

아주 간단하게는 1년전 오늘 10년전 오늘 아니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년 후 오늘, 10년 후의 오늘의 나를 생각하면서 적어넣는 방법도 있겠지.

그만큼이나 사람이란 건 자신에 대한 얼마간의 최근 기억을 ‘나’로 기준 삼아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당장 세워놓은 어떤 가설을 실체라 여기고 살아가라면 또 그대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갑자기 어느날 정신을 차려고보고 나니 어딘지 모르는 누군가의 집에서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이 되어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이 나의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 그런 생경스러은 상황을 다들 맞이하는 것으로 저마다의 ‘인생’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냥 오늘 눈을 감고 누워 잠이 들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또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있겠다 싶다. 매일 같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아침을 시작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사실 그런 걸 느껴보려고 여행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만.

어차피 나에게 아침에 눈을 떠보니 뜻하지 않게 이렇게도 되었다가 저렇게도 되었던 게 흔히 일어났던 일이라 구태여 여행까지 하면서 그런 생경스러움을 맞이하려 하지 않는지도. 아니면 지금의 이 생에서 이젠 잃을 게 더 많아져서인 것인도. 또는 그런 생경스러움에 대한 불안이 과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영원할 것 같다고 생각하거나 기대한 적은 없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중장기적인 인생의 흐름이 그냥 ‘오늘부터 시작’, 또는 ‘오늘로 끝’ 해버리는 경우도 왕왕 경험했다. 굉장히 웃긴다. 바로 어제까지도 작은 문제 하나도 제대로 풀어가겠다며 서로 미친 놈처럼 으르렁거리고 짖어대다가, 갑자기 오늘부턴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는 투로 살아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본다. 그게 그들의 의지로 실현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감정이나 표현들이 그렇게나 그들이 정해놓은 명분에 딱딱 맞춰 나올 수 있는 즉흥적인 것인지.

그 이유도 꽤나 신기하다. ‘오늘부터 새롭게 부서를 재편했으니’, ‘오늘부로 방학이 끝났으니까’, ‘어제 우리 헤어지기로 이야기했으니까’…

나는 이 모든 결정이란 것들이 인간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인데 마치 ‘눈 떠보니 내가 누군가의 자식이 되어있는’ 상황처럼 작용하는 것 같단 거다. 전자의 경우가 감정적으로 칼 처럼 베어내지 못하겠으니까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나’가 된 것처럼 생각해서 어제까지의 흐름과 단절하겠다는 것.

그들에겐 이 과정이 그렇게나 쉽고 자연스러운 것일까? 그렇게나 누군가와 가까와지는 것도 쉽고 당장 이 순간부터 남이 되어버리는 것도 쉬운 것인지도. 하나 뿐인 생이니 그렇게 사는 것이 쓸데없는 감정/시간 낭비 없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최적화된 방식이라면 존중해야겠지. 난 내 인생에 대한 결정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살다보니 온통 시간과 감정 낭비로 가득 찬 인생이라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렇게는 안되겠는지 어렵다.

그래서, 과거의 날짜로 내 생각을 적든지 아니면 미래의 날짜로 적든지 나는 ‘그때의 나’도 ‘새로운 나’도 없는 ‘그냥 그대로의 나’의 생각을 적게 될 뿐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