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민 생활이 10년을 훌쩍 넘겨가다보니 이제 내가 친구라 부를만한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단 사실이 별로 놀랍지도 않아졌다.

예전에 친구라 불렀던 이들의 얼굴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싶은지도.

그런 나에게도 매주 한번씩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친구란 존재가 있단 게 신기하기도 감사하기도 하다.

이분을 처음 알게 된게 이분이 50을 살짝 넘겼을 때인데 이제 곧 70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생각보다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 미국에 이민와서 내가 겪어내던 이런 저런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이 동네 한인도 아니고 학교 동창도 아닌 이 분이 유일하다.

이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들 중 하나가 언젠가 기타를 배우겠단 것이고 당장의 목표는 코드 스트로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코드 스트로크를 하는 건 하루에 30분도 안되는 시간을 들여 이 코드 저 코드 잡다보면 하게 되는 것이니까 언제부터 하겠다 때를 잡을 이유가 없다고 틈나는 대로 하다보면 잘 된다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지 10년 넘은 지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특별히 의지가 박약하다라기 보단 평범한 인간이 뭔가를 뒤늦게 배우겠다고 맘먹고 한다는 게 그 정도로 어렵다라는 것이라 이해하게 된다.

나도 내 삶에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장에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얼마전에 이 사람이 나에게 자신이 새로 산 장난감 기타 (프렛처럼 생긴 버튼을 누르면 코드가 선택되고 스트록을 하는 위치에 달린 레버스러운 스위치를 누르면 스트러밍이 되는)을 가져왔다. 이게 한 세번 쯤 되는 것 같다. 늘 모양새는 달라도 기능은 비슷했다. 코드를 잡는 일이 잘 안되고 (손이 아파서, 또 잘 안외워져서) 스트로크가 그다지 부드럽지 못하니 이런 식으로라도 기타를 배우겠단 거다. 아니 기타를 배우겠노라 스스로 얘긴하고 다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니 이러고 있는지도.

그런 장난감들을 살 돈과 정성이었다면 어설픈 기타 두 어대는 사고도 남았을테고 하다 못해 내가 쓰지 않고 보관만하던 기타를 여러 대 얻어가지고도 남았을 거다.

가장 누르기 쉬운 Em나 Emajor 개방현 코드라도 누르면서 스트러밍을 하다보면 나머지도 결국에 누를 수 있게 된다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따지고 보면 그놈의 Fmajor 코드라든가 B7 코드같은 거 누르기 힘들어서 짜증났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때가 언젠지 기억하기도 어려운 오래전이긴 해도.

저마다 무엇인가 해보겠다 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말하는 (언젠가는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자신의 모습이 좋아 그렇게 말할 뿐, 실제로는 별로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의지가 없다라는 게 나의 해석이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고 진정으로 절실한 것이라고 느꼈다면 이미 해내고도 남았을테지. 그러니까 그들의 말대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은 것이지 언젠가는 해내고야 말겠다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게 오직 기타 뿐일까.

70을 바라보고 많은 세상 경험을 하신 분이지만 아직 은퇴를 앞두고 있고 생각보다 이뤄낸 어떤 인생 목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보니 ‘언젠가는 할 생각이다’라고 말할 뿐, 내가 보는 입장에선 앞으로 그것들을 부지런히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내눈에도 잘 보인다.

그럴 수록에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충분할 거란 착각 때문에, 사실 다른 이유를 핑계삼아 이리 저리 미뤄두고 있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예 스스로를 책망하기 싫으니 하고자 하는 일의 목록에 넣지 않는 노련함까지 생겨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난 당장 오늘 내 눈 앞에서 실행할 수도 있는 일을 저 수십광년 뒤로 보내버리면서 살고 있는 거다. 갈 때가 다 되어 과거를 돌아다보며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을 핑계대진 않았음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