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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연결되는 곳이 불교였다. 이번엔 선불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토픽과 연결됐다.

참으로 재미있는 시각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Matrix가 선불교적인 시각을 영화로 구현한 것인데, 세상을 관찰하는 방식을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해낸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보고 있으면 계속 감탄하게 된다. 그 이해의 깊이가 어떠하든, 선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 영화를 통해 엄청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선불교에서는 이런 시각을 진리로 보는데, 막상 선불교 학당 같은 곳에서 마음공부를 하는 이들이 던지는 질문들을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다들 거창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실상 빨간약을 먹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 와 있지만, 그들에게도 빨간약을 먹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영화 속의 빨간약은 그냥 입에 넣고 삼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대중에겐 빨간약을 삼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 매트릭스와 너무 길게 오래 접속해왔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도 그 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또한 욕망이라,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나도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애틋하기도 하다.

괴롭지 않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불교적인 세계관을 가지려 하는데,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잠시 그런 모드로 돌아와 나와 세상을 바라보면 영화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재미있어서 큭큭 웃음이 나기도 한다. 사실 이 둘을 굳이 구분하려 하지는 않는다. 나라는 것도 결국 내 세계와 한 몸이니까.

내가 알아온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같은 패턴의 삶을 반복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나는 이것을 윤회라고 이해한다. 시선을 나에게 돌리면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환경과 같은 꿈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래도 이 세상(나에게 보이는 세계)의 룰에 따라 삶을 지켜보면서 무던히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그것으로 완전하다. ‘살아 있다’고 여겨지는 동안 매일매일 펼쳐지는 꿈의 세계가 오늘은 또 어떻게 펼쳐질까 생각하면 기대되는 마음도 생기고, 오늘은 어떤 ‘한 생각’이 떠오를지, 또 어떤 이유로 마음이 요동칠지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어진다.

그런데 살다 보면 늘 이런 상태로 있지는 못한다. 삶 자체에 너무 몰입해서 오온의 작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희로애락을 진하게 겪을 때가 오히려 더 많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집중하기보다 과거의 특정 순간을 어설프게 기억해내서 거기 머물러 있을 때도 많다.

요새처럼 쇼츠다 뭐다 해서 콘텐츠를 빠르게 파악하려는 시절에는,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가면 더 다이내믹하고 짜릿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의 내 삶은 느리게 흐른다. 변화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느리다. 그러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려고 마음먹으면 놀랄 만한 속도로 삶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은 꿈이라 불릴 만한 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조건이 변하면서 나타난 것이니, 안타깝든 감동적이든 그냥 그러할 뿐이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왜 그때 나는 그렇게밖에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을까, 왜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 지금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을까.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잠시 몰려왔다가 사라졌다. 이미 지난 일이고, 지금 이 순간 떠올린 과거의 상황은 그때 그 상태와 같지 않다는 것도 알면서. 마치 지금의 나는 진정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전부 알아버렸다는 착각에 빠져 ‘이랬어야 했다’는 생각만 한다. 알량한 욕망에 끌려서.

이런 관점(빨간약)이 나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지만, 영화처럼 파란약 아니면 빨간약, 딱 흑백으로 갈라지는 게 아니라 수시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빨간약을 먹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초인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과연 내가 빨간약을 먹었다면, 나는 그 순간 그렇게 진심일 수 있었을까? 상대방도 나와 같은 진심이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지나서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계속 마주하면서 이별의 순간만 카운트다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지난 과거라도 내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실체라는 게 없는 무상한 그때의 ‘나’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내가 가진 정보는 고작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파편으로 남아 있던 경험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