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지름길?

인생을 불교 용어로 제법무상이니 일체가 공하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투영되는 어떤 이미지를 우리는 ‘진짜’인양 알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중생은 그러한 ‘현상계’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것들로 늘 일희일비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말이다. 쉽게 생각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게임방에 앉아서 하던 게임이 잘 안풀리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반대로 잘 풀리면 좋아죽는 지경이 된다는 이야기와 같다. 사실 그 게임밖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 건데 말이다. 어떤 이는 나란 사람의 실체는 한결같은 존재일 뿐이고, 매일 같이 멀티 유저 공간에 접속해서 들어가 있으면서 온갖 감정을 다 겪고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한결 같은 나의 실체를 찾으라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을 가상 현실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생각하든 하지 않든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어차피 이렇게 한 세상 저렇게 한 세상인건데, 내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는 이 현실의 인생이란 것도 가상현실 롤플레잉 게임과 딱히 다른 것도 없다. 단지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다를 뿐이지. 그런데 역시나 이 게임도 딱 한번이라고 보면 대하는 자세도 같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주어진 시간 동안 겪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태도 말이다. 죽자 사자 뭔가를 어떻게 하기 위해서 온갖 감정의 모양새를 다 구경하고 나온다기 보단, 여러 번 경험한 적 있는 게임을 해나가듯 여유있게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짜증나서 restart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여유롭게 끝까지 가는 그 여정을 즐기라는 것이다.

분노가 치솟거나 슬픔이 몰려오는 것, 또 한없는 욕심이 끌어오르는 것도 이 가상의 현실이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도 이 차원에서 속해서 살아가는 중생의 한 사람인 내가 알 방법은 없다. 게임이 끝나봐야 아주 가는 틈을 통해서 ‘진짜’냐 아니냐를 가늠할텐데 그래봐야 진짜면 어쩔거고 아니면 어쩔건가? 그런 것 하나에 집착해서 맞다 틀리다 하는 것도 역시나 어리석은 생각일 수 밖에 없다. 그냥 이 삶을 살고 있고 어차피 죽음으로 돌아갈 존재에게 ‘진짜’와 ‘가짜’란 것도 딱히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일체를 ‘공’ (없음)이다라고 한 것이고 ‘무아’ 라고 한 것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생의 지름길이라든가 삶의 팁을 알고자 버둥거리는 것은 그 누구도 마스터하지 못한 게임에서 일종의 shortcut이 있지 않을까? 알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같다 봐야할 것이다. 누군가 이 게임을 마스터했다 치자. 그렇지만 내 인생이 그 사람의 인생과 같지 않은데, 어떻게 그 사람이 나에게 지름길 혹은 치트키를 알려줄 것인가? 그게 그대로 먹힐 수 있을까? 또 인생이란 게임을 수천 수만번 리플레이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같은 스토리를 놓고 계속 리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떤 것이 지름길인지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소위 인간에게 인생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인생을 모든 이들이 인정할 만큼 보편타당하게 잘 살아갔다 하는 플레이어들, 즉 성인들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것도 손에 쥐고 태어난 것 없이 단숨에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얻어서 소위 이 인생게임의 랭킹 1위가 된 것도 아니고 하다보니 어떻게 하면 어린 나이에 돈을 빨리 벌어 부자가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을 수 있는가가 게임의 진정한 승라고 생각하는 이상엔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들 낮은 레벨에서 높은 레벨로 가는 길이 돈의 기준으로 맞춰져있다면 되도록이면 낮은 레벨에서 개 노가다하는 이벤트는 최대한 건너 뛰면서도 많은 아이템, 그중에서도 파괴력이 강한 아이템을 빨리 손에 넣어서 레벨이 낮은 이들을 마음대로 부리면서 행복을 누려보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레벨 1인자가 어쩌다 옆에서 고레벨 플레이어가 사망하는 바람에 귀한 아이템을 모두 손에 넣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어차피 인생을 살다가라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고 또 치트키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가상 공간이라고 하면, 또 기왕이면 이 게임을 통해서 남다른 재미를 얻고 싶다면 어쩌다 횡재를 한다거나 게임 시스템의 문제로 뜯하지 않은 행운을 맞이하는 것 보단 이런 저런 시도도 해보고 실패도 했다가 내 방법대로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 인생 게임의 진정한 재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 게임에는 룰이라는 게 없으니 게임의 랭킹이니 스코어니 하는 것도 내가 정하기 나름이다. 나에게 적성이 없는 남들의 기준(돈/권력/명예)에 맞추어 살다보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패배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 왜 내게 주어진 단 한번의 플레이를 패배자 코스프레 들러리로 살아가야 하나?

또 내 기준으로 볼 때 나보다 레벨이 높다는 친구가 하라고 하는 대로 살거나 자기 주장이 쓸데 없이 강한 상대 케릭터가 하자는 대로 내 인생을 플레이 해봤자, 귀한 내 인생 게임의 많은 부분을 허무하게 날려버릴 뿐이다. 이 공간에서 주어진 생명은 딱 하나 뿐이고 어차피 한 번 밖에 못하는 게임이고보면 죽이되든 밥이되는 내 방식으로 묘수를 찾아내는 게 진정한 재미다. 이 삶을 진짜로 보지 말고 내가 거쳐갈 수많은 인생 게임 중에 하나를 잡아서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번 판이 내 생각대로 잘 안된다고 방방 뛸 이유도 없고 쓸데 없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해서 원치 않게 종료시킬 이유도 없다. 끝나기 전까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몰고 갈 수 있을까 전략을 가다듬는 편이 훨씬 더 흥미를 더한다. 안 그런가?

너무 튀어서 너무 재미나게 하려다가 일찍 게임오버 당하기도 하고, 치트키를 쓰려다가 몰수패를 당해서 감옥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된 이들도 보게 된다. 어차피 이 인생게임 정해진 시간까지 플레이하는 건데 이번 판에는 아이템 좀 없이 버텨내는 그런 에피소드를 한다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너무 기죽을 것도 없고 절망할 이유도 없다. 다음 판엔 더 좋은 아이템들 가질 행운이라도 부여받겠지. 게임의 플레이어들과 몹들이 완전히 동일한 조건에서 생성되지도 않았고, 그런 조건으로 돌아가는 게임이면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지 않을까? 실감도 안나고 말이지. 그래도 여태까지 잘 살아왔다면 적어도 이 게임 시스템은 나에게 너무 많은 핸디캡을 부여하진 않은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