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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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쁜 꽃을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인데 사람한테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멋진 무엇인가를 보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거다.
잘 생겨서 좋아한다 이뻐서 좋아한다, 단순히 이유가 그것이라면 내가 꽃을 보고 좋아하듯, 다시 말해 꽃이 이쁘고 향기로와서 좋아하는 것이니까 그것으로 끝인 거다.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는 그 단계를 넘어서려 한다. 사물을 좋아하는 경우는 내가 그 사물이 날 좋아하게 만들 수 없으니까 그쯤하고 말지만 그것이 사람이 되고 보면 그 사람도 날 좋아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난 나일 뿐인데 그 사람의 꽃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게 생각대로 되는 것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또 꽃이 아무리 좋아도 매일 보고 내 책상 위에 늘상 꽂혀있는 꽃이라면 그냥 배경의 하나로 묻혀지게 되듯 좋아하긴 하지만 매일 같이 사랑한다 하진 않을 거란 말이다.
또 웃긴 것은 용케 그 사람이 날 좋아하게 만들었다고 할 때 마치 그 사람을 내가 갖게 된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구속하게 된다. ‘내 꺼’ 니까. 그래서 남한테 빼앗기기 싫고 싫으면 참을 수 없으니까 온갖 못된 짓을 다 해서 상처를 준다. 아니 못 쓰게 만들어서 다른 이의 것도 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사람이 탐욕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하면서 나외 별개인 존재를 소유하려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진정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접근 하면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쪽에 온 정신을 쏟는 일, 그것은 마치 상점에 진열된 이쁜 물건을 보고 꽂혀서 내 손에 넣고 싶어 안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일까? 그 물건을 사려고 돈을 모으는 짓이나 그 사람에게 환심을 사서 날 좋아하게 만드려고 애를 쓰는 짓이나 탐욕스럽기 그지없다. 그게 잘 안되면 울고 불고 세상이 날 버린 것처럼 요란해진다. 마치 원하던 장난감을 갖지 못한 어린 애처럼.
내 눈에 보기 좋은 꽃이 남의 눈에 보기 좋지 않을 리 없지만, 내가 남의 눈에 보기 좋은 꽃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는 것 아닌가? 아쉽게도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이고.
가만 보면 말로는 좋아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은 누군가를 내 소유로 만들고 싶을 뿐이고, 그 누군가가 내 소유가 되었을 때 나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하기 때문 아닌가? 어떤 이득이 되는지는 저마다 다 다른 일이지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소유로 만들어 모든 것을 내가 갖겠다 하는 것이니까 전혀 아름답지도 흐뭇하지도 않은 일인 것이다, 알고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