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한창 화제가 되었던 책인데 뒷북치고 있다. 출판된 형태의 책을 안보는 난데 이제 볼만한 일본 드라마가 다 떨어지고 영화도 볼 게 없으니 책으로 슬슬 눈을 돌리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상상속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재미를 느끼고 보니 책도 보게 되는구나 하고 스스로 놀라고 있다.

사피엔스 라는 책은 상상속의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는다. 인류에 대한 역사를 배우는 책이랄까.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이 책의 작가가 보는 시각으로 보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되는 그런 기분이다. 다시 말해서 ‘아! 그런 것을 왜 여태 생각해보지 못했지?’랄까?

인류의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서 지금 내 앞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보면 지극히 사소하고 문제거리라고 볼 수 도 없겠구나 하게 되는 대범함을 갖게 된달까? 그렇지만 내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은 중요하고 늦지 않게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만.

소위 ‘만류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이지만, 그 역시도 인간이 스스로를 그렇게 명명하였기에 어패가 있다만, 기나긴 인류의 역사로 보면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층부로 도약한 것도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면 정말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모르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들이 불을 다루기 시작하고 제법 큰 단위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제대로 된 사냥을 해서 먹고 살기 전만해도, 인간들은 그저 자기보다 약한 동물들을 잡아먹거나 곤충들을 주워먹고 나무 열매들을 주워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들의 특기는 뼈에서 골수를 채취해 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쉽게 말해 하이에나들까지 버려두고 간 난 동물 사체의 뼛속에 있던 썩은 고기까지를 찾아내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불을 다룰 수 있게 되고 무리 생활을 하기 전엔 인간은 생태계 먹이 사슬에서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종이었음을 생각하면 신을 이야기하고 우주의 법칙을 얘기하기엔 자격이 많이 모자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신과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인간부터 신의 능력에 도전하려는 인간까지 다양하다.

인간 개개인만을 놓고 볼 때, 제대로 된 공동체를 이루어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다른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어 살 수 밖에 없고, 또는 동물중에 특이하게도 자기 종을 죽이는 다른 인간들로부터 공격받아 갑자기 이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

매일 매일 먹을 것을 사냥하고 만들어 낼 능력이 없으니 고작해야 나무 열매나 찾아다니고 곤충들을 잡아먹으며 살아야 하는 나약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태어나자 마자 자연스럽게 속하게 되는 이 거대한 공동체속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덕택에 매일 매일을 풍요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삶의 이 순간들에 대해서 한시도 감사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단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남보다 성공하지 못해서 남보다 많은 ‘돈’을 갖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서 우러나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까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