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합격 (1998)

이 영화에 대해서 사람들의 리뷰를 몇 개 읽어봤는데 다들 느끼는 바가 좀 다르긴 한 것 같다. 영화의 감상이라는 것이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사실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나 감동이 다르다는 묘미가 있는 것이니까.

이 영화의 특징은 내가 느끼기에 좀 설명이나 도입 이런 게 부실하달까? 영화가 그냥 자기 맘대로 진행이 되는데 이렇다 저렇다 설명이 없다. 그것은 보는 사람이 알아서 영화 안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조합해서 껴맞춰 봐야 하는 거다. 어차피 타인의 인생을 그저 곁에서 살짝 들여다보는 것이니까 설명이 주어질 필요가 없는 것이 맞을 것이다.

주연 배우가 “山女壁女”에서 이토 미사키의 친구로 등장했던 분인데, 어린 나이의 모습을 보니 좀 색달랐던 것 같다.

어쨌든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10년간 병상에서 혼수상태로 누워있던 주인공이 24살의 나이로 깨어나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려고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땐 제목을 생각해서 세상에 적응 성공하는 해피 앤딩일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런 줄거리는 아니다. 혹자는 주인공이 끝내 죽는 것이 오히려 해피한 것이 아닐까하는 이야기도 하던데, 극의 분위기가 이를테면 주인공이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서 결국엔 ‘아 이제 충분히 성장했다 그러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하는 방향으로 가진 않는다. 내내 어두운 가운데 약간의 희망이나마 가지고 살아보려고 나름 애쓰지만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 가운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고 만다.

영화에서는 마당 한 가운데 버려진 냉장고 더미가 쓰러지면서 그 아래 깔려 죽게된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그 연출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보는 내 모자른 상황 이해도 때문인지 아니면 불친절함 때문인지, 바로 다음 장면에 온 가족이 참석한 장례식을 보고 ‘아니 냉장고에 살짝 깔린 것 같았는데 죽었네?’라고 이해하게 되었달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어둡고, 영화의 장면 장면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한 때는 가족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지만 어느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각각 독립되어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그 자신도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합격’ 혹은 ‘licensed to live’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비록 10년간 성장이 중지했던 주인공이었지만 결국 해체된 가정을 인정하고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니까 ‘인간 합격’을 했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가족의 개념과는 약간 다르기에 씁쓸하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20살이 넘은 사람이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인간 실격’을 의미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