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드라이진 시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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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4년간은 맥주에 빠져서 그 전까지 마셔오던 맥주의 양보다 훨씬 더 많은 맥주를 마신 듯 하다. 안 마셔본 것은 여전히 많겠지만 적어도 세상에 많이 알려진 맥주는 거의 다 마셔봤다. 그렇게 그렇게 마셔오다 보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빨리 취하지 않고 그래서 마시다 보면 원하지 않게 많은 양을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 마셔도 시원한 맥주의 맛은 늘 좋다.
와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유독 와인은 좀 과하게 취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다. 와인으로 만든 독한 술(브랜디)도 마찬가지로 취하게 되면 좀 심각하다.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을 가져다 준 ‘그랑 마니에르’를 떠올리면 공포감부터 생긴다. 술이 참 달고 잘 들어가는 대신 일단 들어가면 심하게 취해서 마신 날과 마신 다음 날이 불편하다.
위스키에 맛을 들여보니 오히려 이편이 뒤끝이 훨씬 나았다. 아예 독한 술인 것을 알고 마시기에 양을 많이 마시지 않게 되고 마시는 동안에도 그런 것을 감안하고 적당히 긴장하게 되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 스트레이트로 마시지 않고 엄청난 비율로 물이나 탄산수에 희석해서 마시니까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서 살이 찐다거나 하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위스키는 그렇다고 치고 독주에 들어가는 보드카라든가 진에 대해서도 궁금한 나머지 이번엔 드라이진에 도전해봤다. 인터넷 어딜 뒤져봐도 드라이진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쉽게 적어놓은 곳이 없었다. 아마도 언어로 맛과 향을 표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인지 그 원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너무 원료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듣는 사람은 그 원료만을 머릿속에 떠올리기 때문에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내 느낌은 추억의 애프터 쉐이브, Tactics라 불리우던 그 애프터 쉐이브의 느낌과 같았다. 신기하게 이게 여태 팔리고 있단다. 수염도 제대로 나지 않던 시절에 누군가 선물을 해줘서 알게 된 것이긴 한데, 어쨌든 소나무라든가 그와 유사한 나무 혹은 열매의 알싸한 향이 있다. 알콜 수용액과 같다고 해도 될 듯한 보드카와 비교하면 사실 성분상으로 별 차이가 없겠지만 단순히 이 향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하는데, 드라이진이 무색인 것을 생각하면 그 향과 느낌도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향이 좋은 나무에서 뽑아낸 듯한 그 무엇인가를 알콜 수용액에 첨가해서 알싸한 느낌이 나는 독주? 쯤으로 말이다.
드라이진은 칵테일의 기본 베이스가 된다고 하는데, 사실 이 향이 너무 강하면 칵테일의 맛을 다채롭게 내기 어렵게 되니까 적당해야겠다 싶은데, 생각보다 많이 알싸하고 향이 강하단 느낌이다. 위스키보다 마시기 좋지 않을까 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1.75L 짜리 위스키 한병 비우는 것은 저녁에 여유롭게 한잔씩하면 4-5일이면 충분한데, 이것은 못해도 2주일은 더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