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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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니 무심코 어느 방향으로 열심히 열심히 뛰었는데, 뛰고 보니 뭔가 잘못 알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내 경우를 들면 사람이 사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면 너무 복잡하고 귀찮고 마주하기 싫은 나의 현실을 보게 되니 여간해서 이런 생각을 갖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번도 내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이 되려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삶은 마치 정신을 차려보니 마라톤 대회의 출발선에 서 있었고, 갑자기 출발 신호가 울려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가니 나도 그래야 하나보다 뛰고 있는 그런 꼴인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다 같이 뛰고 있는 이 상황에 나만 그만 두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면 크나큰 어려움을 만나게 될 것만 같고, 여태 달려온 노력이 모두 무의미해질 것 같고 하니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즉, 태어나보니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 막연히 보고 듣고 한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정체성과 삶의 의미와 목적 또한 내가 속한 세상에서 정의하고 있는 것을 막연히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것들이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수 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찾아보고 알려 노력하게 된다. 아마도 그러한 것의 궁극적인 해답을 흔히 ‘진리’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아무 생각없이 다람쥐 챗바퀴 돌듯 이게 옳거니 하면서 살아왔는데, 어느 날 누군가 손에 쥐어준 빨간 약을 먹고 보니 그것이 나만의 환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란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내 경우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게 대략 3-4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다. 궁금하면 못 견디는 성격이라 수많은 책도 읽어보고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했지만 다들 그 답을 안다고 얘기하지만 들춰내보면 공허하고 더러는 스스로 공허한 것에 빠져 있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 사람도 많고 공허한 답 그 자체가 답인 것으로 알고 사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트릭스의 경우는 매트릭스에서 빠져 나온 세계가 진짜 세계인 것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가 잘 아는 호접지몽에서 보듯이 나비가 되어있는 것이 진짜인지 사람으로 있는 것이 진짜인지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는 관점도 있다.
대개는 그 어느 것도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자각하고 있는 세상이란 것은 마치 하얀 스크린 위에 어떤 이미지가 영사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저 우린 우리의 감각기관이 뇌로 보내주는 자극을 바탕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니까 우리의 몸이 ‘진짜’가 아니라면 우린 또 우리가 모를 어느 차원의 세계에서 진짜인양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감각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나, 내 자신, 근원적인 나, ‘참나’에 대해서 인식하려하고 그것이 어떤 것일지 모르는 현실에서 내가 오직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즉, 감각기관과 에고, 수많은 잡념들로 자극을 받고 있는 어떤 근원적인 정신요소(?) 말이다.